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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섬세함, 소금집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얼마 전,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여러분들은 여행 갈 때 어떤 마음으로 떠나시는지...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얼마 전,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 라이프스타일 덕후…

2019. 01. 25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얼마 전,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고 온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여러분들은 여행 갈 때 어떤 마음으로 떠나시는지 참 궁금하다. 무덤덤하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대개 두근두근하시지 않을까? 나는 사실 일본에 꽤 자주, 그리고 오래 가는 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약 한 달 정도를 일본에서 머물렀지만 여전히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리무진을 탈 때면,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숨기기 어렵다. 부끄럽게도 이번 휴가도 출국 전날 밤을 뒤척이다 꼴딱 새버렸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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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보면, 역시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장소에 가는 일은 참 설레는 일이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곳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나와 알고 지낸지 2년. 그럼에도 나는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여전히 설렌다. 어디냐고? 서울의 샤퀴테리아, 소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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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샤퀴테리아(Charcuteria)’라는 말이 꽤 낯설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설명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우선 샤퀴테리란 단어부터 알아야한다. 소시지, 베이컨, 육포, 하몽, 살라미까지. 샤퀴테리는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가공육 전반을 뜻하는 단어다. 육류 문화가 발달된 유럽이기에 그 종류는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럼 샤퀴테리아는 뭘까? 맞다. 바로 샤퀴테리를 만드는 곳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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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을 내가 굳이 샤퀴테리아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소금집은 샤퀴테리를 직접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공방’이다. 그래서 소금집 델리는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소금집 크루라는 장인들이 만든 샤퀴테리를 최적의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장소에 가깝다. 마치 목수의 공방 옆에 딸린 작은 가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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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소금집 델리의 모든 것은 샤퀴테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여러분이 방문하면 곧 느낄 수 있을 테고, 또 나도 차근차근 이야기하겠지만, 샤퀴테리의 매력에 여러분이 흠뻑 젖어버리도록, 소금집 델리는 그렇게 만들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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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닭갈비집 위에 유난히 차분한 가게를 찾았다면, 그곳이 바로 소금집 델리다. 샤퀴테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3가지 요소라는 고기, 시간 그리고 소금이다. 여기서 이름을 따와 소금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별 특징 없는 재료들이 모여 샤퀴테리를 만드는 것처럼, 소금과 집이라는 간단한 요소가 모여 소금집이라는 멋진 곳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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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 델리에 자리를 잡으면 왠지 모를 어색함과 불편함이 급습한다. 이유? 아주 간단하다. 테이블이다. 소금집 델리의 테이블은 작고, 낮다. 커피숍에나 어울릴법한 크기다. 회전율을 높이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하셨다면, 땡! 사실 이것 역시 소금집의 섬세함과 자부심이 결합한 결과다. 샤퀴테리 보드와 물잔 혹은 술잔을 두고 나면 팔만 걸칠 수 있는 크기의 작은 테이블은 샤퀴테리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물과 술을 제외한 부차적인 것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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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테이블의 높이가 낮으니 팔을 걸치면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다. 테이블이 작은 이유는 몸을 기울여 상대방과 나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하기 위함이다. 바로 대화를 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고려다. 사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작은 가게인 탓에 옆 테이블의 대화가 다 들리는 것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하지만 샤퀴테리가 나오고, 동행인과 대화하기 시작하자 정말 마법같이, 주변은 사라지고 나와 샤퀴테리, 그리고 상대방만 남았다. 꼭 물에 젖어가는 수채화처럼 주변이 뭉개지는 경험, 다른 어디에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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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 델리는 선불이다.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반드시 카운터로 와서 주문을 해야만한다. 주문을 위해 기다리다보면 자연스럽게 늘어진 가공육에 눈이 간다. 여러분이 곧 먹을 주인공, 소금집의 자랑스러운 샤퀴테리를 관람할 시간이다. 설사 이미 방문해본 사람이라고 해도 여기서 눈을 떼기는 어렵다. 진열된 고기가 항상 다른 탓이다. 곳곳에 걸린 고기들은 장식이 아니라, 가공의 마지막 단계를 거치고 있는, 실제로 사용될 고기들이다. 그래서 진열대에 있는 고기들도, 혹은 주렁주렁 늘어진 고기들도 모두 갈 때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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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명 TV프로그램에는 샌드위치 맛집으로 나온 모양이지만, 이곳의 진짜배기는 샤퀴테리 보드다. 나도 가장 큰 그랜드 보드는 먹어보질 못했고, 2~3인용 샘플러 보드와 3~4인용 샤퀴테리 보드는 몇 차례 먹어봤다. 하지만 사실 여전히 소금집의 모든 샤퀴테리를 먹어본 건 아니다. 어째서냐고? 소금집은 그때 그때 가장 좋은 재료와 조합을 고려해 매번 다른 보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내가 소금집을 꾸준히 방문하는 좋은 핑곗거리다. 이미 여러 번 왔어도 매번 시킬 때마다 무엇이 나올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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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나보이는 사진도 있으니 여러분께 소금집의 샤퀴테리가 어떤 맛인지 설명해야할 차례가 왔다. 정말 죄송하지만, 거참. 설명하기가 어렵다. 소금집은 이제 40개에 가까운 샤퀴테리를 만든다. 게다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준이 엄격해 어떤 샤퀴테리는 배송만을 하고, 또 어떤 샤퀴테리는 보드나 샌드위치에만 들어간다. 그래서 감히 어떤 맛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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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러분을 위해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보겠다. 말린 날고기처럼 생긴 드라이큐어드 계열은 향신료의 향이 도드라지면서, 고기 곳곳에 박힌 기름의 맛이 특징인데, 먹다보면 ‘혀가 호강하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풍부한 맛과 향, 쫄깃한 식감이 잘 어우러진, 내게는 서울 최고의 드라이큐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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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계열은 스파이스와 풍부한 고기의 향이 자랑거리다. 살짝 매콤한 킥도 있는 편이고, 맛이 강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핫도그로 만들어 먹으면 잘 어울릴 듯싶다. 물론 맥주 안주로도 기가 막힌다. 델리 미트는 육향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무척이나 부드러워 진입장벽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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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공육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보존식이고, 소금집은 그 본질을 좇다보니 전반적으로 조금 짭짤한 편이다. 하지만 그대로 먹는 드라이 큐어드는 그다지 짜지 않고, 짠 샤퀴테리는 식재료로 사용하라고 알려준다. 홈페이지에서는 각 샤퀴테리마다 용도를 설명해주고, 레시피도 추천해주니 참고하자.

부족하나마 어찌어찌 설명했지만,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나는 장담할 수 있다. 소금집의 샤퀴테리는 소중한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맛이다. 그렇기에 소중한 독자 여러분에게도 기꺼이 권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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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다시피, 샤퀴테리는 유럽의 가공육 전반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샤퀴테리아들은 국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프랑스 방식, 이탈리아 방식, 스페인 방식이 있고 만드는 집마다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방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소금집은 국적이 없다. 샤퀴테리의 뿌리를 소금과 고기에서 찾고, 세계의 어떤 스타일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소금집에서 샤퀴테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국적은 미국부터, 스페인, 프랑스, 헝가리, 한국까지, 너무나도 다채롭다. 최고의 맛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이유있게 여러가지 맛을 더한다. 세계의 모든 방식과 고집이 조화를 이루는 맛. 그것이 바로 소금집이 추구하는 샤퀴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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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많이 먹는 ‘인도 커리’인 치킨 티카 마살라는 사실 영국 요리다. 인도 커리가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영국인에 맞게 현지화된 요리다. ‘선데이 로스트’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외식 음식이기도 하고. 갑자기 영국 요리 이야기는 왜 하냐고? 내가 영국인 친구에게 영국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때, 그 시작이 된 음식이 바로 ‘치킨 티카 마살라’다. 고작 음식으로 뭘? 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커리 한그릇으로 우리는 영국의 소수인종 문제와,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 영국인의 일상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음식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문화지만, 동시에 문화를 이해하는 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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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집은 샤퀴테리가 그런 역할을 수행하길 원한다. 소중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소통하고 함께하는 홈파티가 일상적인 미래를 꿈꾼다. 소금집의 샤퀴테리 세트들은 그런 미래를 꿈꾸며 소금집이 세심하게 준비한 결과물이다. 파티를 준비하며 간단히 집어먹을 훈연 아몬드와 스모크드 캬라멜같은 스낵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을 위한 샤퀴테리들, 파티가 끝나고 다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재료들이 하나의 세트에 섞여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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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육이라는 단어가 주는 투박함이 있음에도 소금집은 섬세하다. 섬세하게 샤퀴테리를 만들고, 섬세하게 손님을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소금집은 늘 색다르다. 모순된 말일지 모르지만, 소금집은 우직하게 새롭다. 설레는 섬세함을 주는 곳, 이곳은 소금집 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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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ress :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9길 14 /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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