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해

생일 파티를 했다. 친구들을 불렀다. 생일 파티의 노른자위는 역시 선물 증정식이다. 생일이라고 해서 꼭 선물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선물을...
생일 파티를 했다. 친구들을 불렀다. 생일 파티의 노른자위는 역시 선물 증정식이다. 생일이라고…

2019. 01. 23

생일 파티를 했다. 친구들을 불렀다. 생일 파티의 노른자위는 역시 선물 증정식이다. 생일이라고 해서 꼭 선물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선물을 받는다는 건 역시나 즐거운 행위다. 올해 선물 리스트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코닥에서 나온 폴라로이드 카메라, 액세사리 등을 넣을 수 있는 보석함,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모양 쿠션, 다스 베이더 피규어. 어느 하나 실용적인 건 없다. 친구의 남자친구는 하얀 코트를 입은 아기 모양 초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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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양의 초를 과연 좋아하실까 했는데”]

초라는 건 태우면 녹아버리는 물건이다. 사람 모양의 초에 불을 붙여서 녹여버릴 대담함을 지닌 사람은 세상에 몇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이지 쓸모없고 예쁘기만 한 물건이다.

그는 말했다. “뭘 살까 고민하는데 여자친구가 이게 딱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 모양의 초를 과연 좋아하실까 했는데, 여자친구 말로는 이걸 진짜 좋아하실 거라며. 근데 이미 이걸 갖고 계시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럼 더 좋다더라고요. 하나는 그냥 장식용으로 두고, 남은 하나는 진짜로 태울 수도 있지 않냐고 말이에요” 그의 여자친구는 말했다. “역시 오빠 선물용으로는 쓸모없고 예쁜 게 최고야!” 맞다. 내 친구들은 나를 정말로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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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겉으로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이 마포 아파트는 온갖 쓸모없고 예쁜 것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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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한테 이게 어울릴 것 같아서”]

여행을 갔다 온 친구들 역시 항상 쓸모없는 것들을 사다 준다. 멕시코로 출장을 간 친구는 해골 모양의 소품을 사가지고 왔다. “형한테 이게 어울릴 것 같아서”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나는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예전 잡지사 후배가 퇴사 기념으로 선물해 준 해골바가지와 딱 어울리는 세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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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쓸모없는 물건 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물건을 사랑한다]

호주로 여행 간 친구는 나무로 만든 캥거루를 가져왔다. 나 역시 여행을 가면 쓸모없는 것을 사 온다.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스코트를 사 왔다. 파리에선 100년도 더 된 아기 흉상을 샀다. 이 흉상은 5월 파리 벼룩시장에서 햇살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100유로가 넘는 가격이지만 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수트 케이스를 열었을 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파리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이 흉상은 우중충하게 비 내리는 서울에서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 흉상을 사랑한다. 나의 쓸모없는 아이템 리스트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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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적한 밤마다 이베이로 들어가서 수많은 키워드를 넣어본다. ‘figurine(장식용의 작은 조각상)’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수 많은 자기로 만든 장식품들이 쏟아지듯 컴퓨터 화면에 떠오른다. 거기에다 나는 ‘Cat’이라거나, ‘Olympic ㅡMascot’, ‘vintage’ 같은 키워드를 매칭한다. 그리고는 세네 시간 동안 오롯이 이베이 검색에 나의 인생 한 조각을 투자한다. 그렇게 구입한 물건들로는 핑크색 사슴 머리 촛대, 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 거대한 브론토사우르스 피규어, 아기 머리 모양 촛대, 원숭이 피겨린, 아인슈타인 피규어, 빈티지 고질라 피규어 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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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쓸모없는 모으는 취미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 유년기부터였을 거라는 짐작은 있다. 아버지는 뭐든지 정리하고 버리셨다. 어머니는 뭐든지 모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혼자 살면서부터는 물건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역시도 눈치를 봐야 하는 순간은 온다. 이사할 때다. 지난번 이사 때는 직원이 포장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건이 참 많으시네요” 나는 답했다. “쓸모없는 게 좀 많아요. 그런데 제가 아끼는 것들이니까 포장할 때 조심히 해주세요” 그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지만 얼굴 한 구석에서 얼핏 깊은 어둠을 내보이는 것도 같았다. 내가 이삿짐 센터 직원이라도 나 같은 고객이 가장 귀찮고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쓸모없는 것을 사기 위해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다음 이삿짐 센터 직원의 고통을 구매하기 위해 이베이로 접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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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쓸모없고 예쁘기만 한 물건들을 사시라]

우리는 쓸모있는 인생을 살라는 조언을 언제나 듣고 산다. 하지만 오로지 ‘쓸모’에만 집착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지루한가. 물건과 소비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쓸모있는 것으로만 둘러싸인 집이란 정말이지 따분하게 삭막하다. 인간은 쓸모있는 일만을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쓸모있는 무언가를 하는 사이사이 쓸모없는 짓들을 한다. 그건 너무나도 인간적인 행위다. 삶이 언제나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일깨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권한다. 가끔은 쓸모없고 예쁘기만 한 물건들을 사시라.

그것은 쓸모만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한 당신의 소소한 항명이 될 것이다. 쓸모없는 쇼핑벽을 너무 근사하게 포장하는 거 아니냐고? 맞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나의 쓸모없는 것에 대한 열망을 당신에게 전염시키고 싶은 것이 맞다. 시작으로 권하고 싶은 건 태우기는 아깝고 안 태우려니 더 아까운 예쁜 양초다. 언젠가는 그걸 불사르며 쓸모없는 것을 더욱 쓸모없이 만든다는 휘발성 강력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kimdo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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