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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을 샀다

생수를 샀다. 프랑스산 생수인 에비앙이다. 에비앙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었다. 부유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에비앙을 좋아한다. 알프스산맥에서 솟아난 물을...
생수를 샀다. 프랑스산 생수인 에비앙이다. 에비앙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었다. 부유한 사람이 된…

2018. 12. 10

생수를 샀다. 프랑스산 생수인 에비앙이다. 에비앙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었다. 부유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에비앙을 좋아한다. 알프스산맥에서 솟아난 물을 먹는다는 호사스러운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도 에비앙은 플라스틱병이 예쁘다. 빛을 받으면 파르라니 반사되며 몽블랑처럼 빛난다. 예쁜 것을 냉장고에 가득 채운 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얻는 시각적 기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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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은 비싸다. 삼다수의 두 배다. 그런데도 나는 왜 에비앙을 그렇게 좋아하는가? 그저 예뻐서? 물론이다. 그런데 나의 에비앙에 대한 애정에는 내 입으로 직접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가 하나 숨어있다. ‘허영’이라는 단어다. 영국에 살던 시절 나는 항상 에비앙을 들고 길을 걸어 다녔다. 그걸 들고 다니는 것이 어떤 아름다움과 부유함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러다 친구를 길에서 마주쳤다. 비교적 값이 싼 볼빅을 들고 있던 친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데이먼(나의 영국 이름이다). 너는 정말 패션 victim이야” 그는 내가 에비앙을 들고 다니는 행위의 허영을 완벽하게 간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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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oon Kim(@closer21)님의 공유 게시물님,

*편집자주: 필자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한솔로, 너무 예쁘고 시크하고 혼자 다해서 나 혼자 짝사랑 중이다.

고양이를 처음 길에서 입양한 날도 그랬다. 고양이를 입양했다는 소식에 친구들이 집을 방문했다. 고양이 물그릇에 물을 담아야 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에비앙밖에 없었다. 벌이도 변변찮은 시절이었는데도 에비앙 만으로 가득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에비앙을 꺼내어 고양이 물그릇에 따랐다. 친구들이 나를 경외롭게 한심한 얼굴로 쳐다봤다. 한 친구가 말했다. “고양이한테 에비앙을 먹일거니 계속?” 나는 변명했다. “아니야. 마트에서 할인을 하길래 에비앙을 샀을 뿐이야.”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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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변명을 하는 순간 나는 할리우드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하는 엘르는 길을 걷다가 물그릇을 바닥에 놓은 뒤 강아지에게 주기 위해 에비앙을 따른다. 나는 금발도 아니고 캘리포니아의 부잣집 자손도 아니다. 15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살면서 고양이에게 에비앙을 따라주는 남자라니, 이거 진짜 진귀한 허영의 불꽃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종종 에비앙을 산다.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에비앙을 보면서 잠깐의 허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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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에비앙이 그렇게 맛있는 물은 아니다. 목으로 넘길 때의 부드러움은 좋지만 어쩐지 텁텁하고 비릿하기도 하다. 우리가 삼다수를 들이킬 때 느끼는 강렬하고 칼칼한 시원함도 부족하다. 이 미네랄이 가득한 석회수가 한국적인 물맛은 아니라고 표현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꼭 실속으로만 소비를 선택하는 동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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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에게는 아주 약간이라도 일상의 허영이 필요하다. 당신 역시 그럴 것이다. 배달 음식을 아라비아 핀란드 접시에 담아 먹는 당신도, 인스턴트 커피를 웨지우드의 잔에 따라 먹는 당신도, 유니클로 재킷에 에르메스의 스카프를 두르는 당신도, 일상의 작은 허영이 주는 자기만족의 기쁨을 알 것이다. 그런 허영은 삶을 보다 부드럽게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스스로에게 작은 허영을 허락하라.

kimdo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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