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M의 취향] 香을 피웠어요

안녕, 에디터M이다. 오늘은 향기로운 물건을 가지고 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도는 요즘, 스탠드를 켜고 책상에 앉는다. 사과 마크가 그려진...
안녕, 에디터M이다. 오늘은 향기로운 물건을 가지고 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도는…

2018. 11. 19

안녕, 에디터M이다. 오늘은 향기로운 물건을 가지고 왔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도는 요즘, 스탠드를 켜고 책상에 앉는다. 사과 마크가 그려진 노트북 뚜껑을 연다.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과 동시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마음이 허공에서 떠다닐 땐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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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스는 불을 붙여 연기를 내는 향(香)을 말한다. 얇은 빼빼로처럼 생긴 것부터 원뿔형까지 형태는 다양하지만, 아로마 오일을 섞은 반죽을 말린 것에 불을 붙여 사용한다는 건 공통이다. 흔히 제사 때 ‘향을 피운다’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제의를 위해 사용했다. 실제로 인센스의 향이 심신을 정화하고 정신을 맑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인도에서는 요가나 명상을 할 때 자주 피웠고, 60년대 미국에서는 히피 문화의 부흥과 함께 젊은이들의 옷자락에서는 인센스의 향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batch_tam-wai-469514-unsplashbatch_natchaya-shw-769729-unsplashbatch_patrick-reynolds-1119559-unsplash[사실 모기향도 일종의 향이긴 향이지…]

제사, 인도 그리고 히피. 이 세 개의 단어만으로도 인센스가 대충 어떤 느낌인지 그려지실 거라 믿는다. 향초의 가볍고 부드러운 향과 다르고, 디퓨져의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향기와도 조금 결이 다르다. 최근 기술의 발달로 많은 브랜드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향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향료를 ‘태워서’ 향을 내기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다. 흔히 말하는 절에서 나는 향이나 혹은 제사 때 피우는 향을 상상하면 된다. 이국적이고 짙은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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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인센스 중 하나인 나그참파, 하지만 호불호가 명확하다. 나는 당연히 호]

이처럼 유규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최근 다시 그 인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유명한 인센스 중 하나인 나그참파를 명상 때마다 피운다는 것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소길댁 효리 언니가 방송에서 향을 피우는 모습이 덕분에 뭍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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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향은 오이뮤(OIMU)의 제품이다. 내가 또 이 브랜드를 참 좋아한다. 오이뮤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건을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포장해 우리 앞에 내민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MATCH(성냥)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시절 장발의 DJ가 있던 다방의 테이블 위엔 꼭 유엔 팔각성냥이 있었다(라고 들었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성냥. 오이뮤는 그 성냥을 다시 찾아내 이토록 근사하게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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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AIR(공기)다. 이번엔 국산 천연 향의 명맥을 유지해온 청솔향방과 손을 잡았다. 장인의 손으로 정성스럽게 뽑아낸 향은 자연풍에 수개월간 건조한 뒤에나 우리 곁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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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피울 오이뮤 ‘인센스 스틱 패밀리’는 이번 AIR 프로젝트의 모든 향을 5개씩 모아둔 일종의 샘플러다. 백단나무, 귤피, 개암 그리고 무화과가 금박으로 볼록 튀어나온 패키지가 어찌나 앙증맞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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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열면 쿠키 박스처럼 가지런한 스틱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빨간색의 백단나무, 노랑색의 귤피, 회색의 개암 그리고 보라색의 무화과 향이 딱 5개씩 20개가 들어있다. 가격은 7,000원. 조금씩 사용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향을 박스로 살 계획이다. 책상 위에만 두어도 강한 향으로 존재감을 나타내는 인도의 인센스와 달리 오이뮤의 인센스는 가까이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대며 맡아도 아주 은은한 향을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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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을 소개할 차례다. 사실 오늘의 M의 취향은 이걸 위해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찾아헤맸다. 나만의 완벽한 인센스 홀더. 타고 남은 재를 흩어지지 않게 잘 모아주어야 하고, 흔해 빠진 나무로 만들어진 모양이 아니어야하며, 과하지 않은 디자인일 것. 은근하고 아름다운 인센스 홀더를 나는 얼마나 찾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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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 glasswork :-)(@studio_ou)님의 공유 게시물님,

우연히 내 피드에 뜬 한 장의 이미지엔 내가 그토록 찾던 인센스 홀더가 있었다. 스튜디오 OU 글라스 워크는 유혜연 작가가 만든 유리 공방이다. 이곳의 모든 유리 제품은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내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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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표면, 서툴게 그린 듯한 원형의 금빛 테두리. 불규칙한 모양의 플레이트에 일자로 뻗은 인센스 스틱을 꽂으면 퍽 잘 어우러진다. 이 곡선과 직선이 조화가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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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하는 과정이 굉장히 험난했다. 그 흔한 온라인 스토어도 없거니와 한남동에 있는 쇼룸은 11월 내내 닫혀있었다. 무수히 많은 해시태그와 검색의 파도를 건너 겨우 판교의 오르에르 스토어에 소량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 보내지도 않는 DM을 보내 택배로 물건을 받았다. 사실 가격도 꽤 있다. 지름 7cm 정도의 작은 유리그릇이 2만 8,000원이라니. 과정은 험난했지만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일렁거리는 모습을 보니 사길 잘 했단 생각이 든다. 너무 화려하지도 심심하지도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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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향에 대한 취향은 명확하다. 딥디크 탐다오를 시작으로 요즘 즐겨 뿌리고 있는 이솝 마라케시 인텐스로 이어지는 한결같은 취향. 흔히 말하는 절간의 향이다. 시간의 향을 입은 오래된 나무의 향을 좋아한다. 4가지 향 중 고민했지만 내 첫 번째 선택은 역시나 빨간색의 백단나무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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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거리며 투명하게 빛나는 홀더에 빨간 인센스 스틱을 꼽고 더 빨갛게 빛나는 불을 붙인다. 활활 타오르던 불은 이내 사그라들고 검고 빨간 불빛만이 반짝인다. 시간은 딱 15분. 춤추듯 흔들리는 연기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플레이트 위에 앉은 회색빛 재는 휴지통에 털어 둔다. 향을 피울 때보다 은은하게 나는 잔향이 더 향기롭다. 역시 쾌쾌한 향기를 잡는데는 인센스만한 것이 없다.

batch_DSC09970[인센스 홀더로 사용하지 않을땐 액세서리 플레이트로 쓴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향은 매일 밤마다 부리는 최고의 사치다. 형태는 없지만 이 공기는 분명 내 주변을 가득 채운다. 비록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이 향이 온전히 전달되진 못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이 정취가 여러분들에게 닿았으면. 그리고 이 인센스의 향기처럼 여러분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이었으면.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