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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집에 가면

안녕, 디에디트 원고 노예 김작가다. 오늘은 꼬맹이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울트라매니아’로 컴백한 붉은 머리의 서태지가 연일 화제였고,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을 모으는 것만이...
안녕, 디에디트 원고 노예 김작가다. 오늘은 꼬맹이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울트라매니아’로 컴백한 붉은…

2018. 10. 31

안녕, 디에디트 원고 노예 김작가다. 오늘은 꼬맹이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울트라매니아 컴백한 붉은 머리의 서태지가 연일 화제였고,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을 모으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였던 그때의 이야기.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L 함께 그의 집에 놀러 갔다. 얼리어답터였던 친구는 내게 처음 보는 CD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시연한 , 내게 한번 해보라며 키보드를 넘겼다.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고 해가 저물자 친구의 어머니는 저녁을 했고, 나는 남의 가족과 우리집인냥 저녁을 먹었다. 그거 번뿐이랴. 수도 없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인스타그램에 남기지 않았어도 머릿속엔 아름다운 피드로 정리되어있다. 벽걸이형TV 자랑하며 영화를 보여준 K, 포켓몬스터 골드버전을 디스켓에 복사해줬던 N. 남의 집에 놀러 갔던 때는 매번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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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억이 사라진 서울특별시에 살면서부터다. 지방에서 상경한 나와 내 친구들의 자취방에는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었다. 간신히 술자리만 있는 자리보다는 밖에서 노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소개할 남의집 프로젝트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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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집 프로젝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알지 못하는 남의 집에 놀러가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호스트 ,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하고 싶은 집주인이 모임을 개설하고, 인원이 차면 한날한시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만나 노는 모임이랄까. 종류는 크게 두 가지. 특정한 호스트와 주제가 있는 ‘남의집 모임’과 정말 남의 집(공간)을 빌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남의집 서재’. 무엇을 선택할지는 당신의 자유다. 

신청하는 법은 생각보다 간편했는데, 남의집프로젝트 웹사이트에 등록되어있는남의집들을 둘러본 끌리는 모임을 선택하고, 네이버 페이를 이용해서 결제를 하면 끝이다. 다만 결제를 하면서 입력해야 추가 정보들이 조금 있다. 지원동기와 내가 어떤 사람이며 현재 운영하는 SNS 무엇인지 알려주면 되는데, 아무래도 가정집에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호스트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내가 신청했던 모임은 남의집 보이차였다.

batch_fursys3[모임의 주제는 제약이 없다. 위사진 속 주제는 ‘남의집에서 슬램덩크 보기’다]

남의집에 놀러 가는 모임? 그거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있는데, 오늘 내가 참여할 ‘남의집 보이차’의 경쟁률이 2:1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정말 참여하 싶은 주제라면 지원동기를 진심 있게 쓰도록 하자. 재밌을 같아요, 흥미가 있어서요, 라고 적으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잊지말자. 여기는 한국이고 경쟁은 피할 없다는 사실을. 최종 합격을 하면 집주소가 카톡으로 전달되고 그곳으로 찾아가면 된다. 과정도 놀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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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소와 함께 받은 안내메시지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있었다.모임은 4시에 시작해서 4~5시간 소요됩니다 보이차 하나 마시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지? 싶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가지 종류의 보이차를 마셨고, 모두 다른 종류의 차였으며 차를 마시기 전에는 보이차에 대한 역사, 마시는 , 차의 종류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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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는 보이차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여행작가인 그녀는 오랫동안 보이차에 빠져 살았으며, 대신 보이차를 마신 됐고, 지금은 보이차에 관한 책을 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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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보이는 다기와 보관되어있는 온갖 종류의 차들이 그녀가 보냈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최근 사이에 보이차가 평소의 관심보다 주목을 받게 이효리 덕분이라고 한다. <효리네 민박> 통해서 이효리와 이상순이 보이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 보이차는 중국 운남성에서 자라는 차나무 잎을 발효해서 만든 찬데, 다이어트, 건강 그리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 보이차는 홍차나 녹차처럼 유명한 차가 아니었고, 중국의 소수민족의 전통차였다. 오직 효능 덕분에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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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를 처음 마셨을 몸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땀이 많이 났다. 그래서 몸이 사람이 마시면 좋다고 한다. 땀을 흘리고 나니 몸이 굉장히 가볍고 개운했다. 이효리가 마시는 차의 종류(비싸다고 한다) 마셨는데, 혀끝이 둔한 편인 나는 맛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마신 4개의 모든 보이차가 다르다는 있었다. 보이차의 세계를 아주 살짝 맛본 같았다. 보이차 수업이 끝나니 선생님은오늘 저녁에 다들 바쁘세요?”하고 물었다. 친절한 호스트는 시간이 괜찮다면 저녁 식사를 하고 가는 어떠냐고 물었다. 해가 7 ,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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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이 우리들은 근처 공원에서 30 정도 산책을 하고 돌아오기로 한다. 이날 호스트 옆에서 물을 끓이며 남의집 보이차를 도와주신 남자분이 안내를 해주셨다. 안내자는 곳을 동네주민들만 아는 공원이라고 소개했다. 여행 기분이었다. 서울이지만 비일상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에. 낯선 취미를 즐기기 위해 모인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낯선 공간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었다. 30분이 조금 넘어 다시 남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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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를 닮은 요리 그리고 렌틸콩으로 만든 음식들이 한 상 가득차려졌다. 이름은 몰라도 호스트의 취향이 듬뿍 담긴 요리들이었다. 과연 세계 곳곳을 여행한 작가다운 메뉴였다. 낮에 있었던 보이차 시간 때는 대화의 주제가 보이차에 관한 궁금증뿐이었는데, 저녁에 이어진 소셜다이닝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정년퇴직한 교사의 행복한 , 매일 밤을 새우는 직장인의 고된 .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음식을 나누며 인생을 논했다. 물론 술도 빠지지 않았고. 어색할 것만 같았던 모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하게 느껴졌다.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 조별모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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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기억은 다르겠지만, 내가 겪었던 조별모임은 모두가 약간 들떠있는 상태였다. 3 탈출한 아이들은 누구와도 친구가 있을 정도로 마음이 열려있었, 우리는 1학년이라는 이유로 정말 쉽게 친해졌다. 그런데 사회생활에서는 달랐다. 아무리 자주 만나는 담당자라 할지라도 일로 엮인 사이에는 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의집 보이차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미 보이차로 벽이 허물어진 상태였고, 쉽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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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에 시작해 10시에 끝난 모임으로 주말 내내 기분이 좋았다. 당장 친한 친구들에게 강력하게 영업했다. 하지만 남의집 프로젝트의 모든 모임이 이와 완벽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친구K 집에서 봤던 영화와 N 집에서 했던 게임이 다르듯 호스트의 취향에 따라 모임의 성격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낯선 것에서 느끼는 의외의 편안함. 그건 어떤 남의집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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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