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은 보잘것 없었다. 작은 여자애는 제 몸집의 두 배나 되는 연습용 스폰지 보드를 낑낑대며 바닷가로 옮겼다. 처음 입어본 서핑용 웨트 수트는 내 몸을 옥죄었다. 보드에 발목을 묶고 파도를 향해 걸었다. 보드 위에 바짝 엎드려 팔을 젓다가, 파도가 오면 일어서야 한다. 음, 일어설 수 없었다.
[타지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첫 서핑의 추억은 그저 헤엄치기와 바닷물 먹기가 다였다. 즐거웠다 그래도. 이상하게 튜브보다 보드가 더 안정적이었다. 그 위에 누우니 세상이 평화로 가득 찬 듯했다. 잘 타는 서퍼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트위치를 보는 것만 같았지. 일어서서 파도를 타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웠지만 모든 서퍼들의 시작은 다들 이랬다고 하니, 그러려니 넘어간다.
첫 서핑의 추억을 잊지 못한 나머지 아웃도어 멀티샵을 찾았다. 이곳은 프라이데이 무브먼트. 사연 있는 공간이다. 샵을 열고 싶었던 당시 백팩킹을 좋아했던 대표님은 본인이 앞으로 어떤 걸 좋아하게 될지 몰라 걱정했다. ‘지금은 아웃도어를 좋아해서 괜찮지만, 나중엔 하고 싶은 게 바뀌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말이다. 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FRIDAY MOVEMENT ‘당신과 내가 금요일에 하고 싶어지는 모든 것을 담겠다’는 의미다.
[평일엔 일하고 금요일 저녁엔 취미를 항해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 프라이데이 무브먼트는 서핑 제품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현재 운영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서핑’이기 때문이다. 타 편집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제품이나 온라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은 매력 없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매력적이라 느끼는 것들을 들여왔다.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디에디트 스타일이다. 벌써 재밌어.
이 공간이 반가운 나머지 내 감정부터 풀어놨다. 처음 만난 사장님께 “최근 서핑을 배웠는데 설 수 조차 없었다”며 투덜거렸더니, 당연하단 눈빛을 보내왔다. 이곳엔 초보자들이 살 게 없다며 사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더라. 아니, 초보자들은 어디서든 아무것도 사지 말라셨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원래 뉴비일수록 장비가 탐나는 법. 뭐라도 사갈 수 없냐 떼쓰니 사장님 가라사대, 초보자는 꾸준히 장비를 대여해 자신에게 맞는 타입을 찾아 나가라 하시더라. 뉴비는 대여가 답이다.
[‘Koalition 코엘리션’ 핀]
상어 지느러미처럼 생긴 제품은 ‘fin’이라 부르는데 보드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저마다 모양이 다르길래 초보자는 어떤 걸 써야 하나고 물었다. 사실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예뻐서 뭐라도 사고 싶어 물었을 뿐. 솔직하게 “그냥 예쁜거 위주로 사면 안되나요?”라고 말하니 그게 정답이라더라. 다른 모양만큼이나 다른 역할을 하지만, 정말 많이 타보지 않으면 차이를 모르니 그냥 예쁜 걸 가지라고. 그래요, 저렇게 예쁜걸요.
‘코엘리션’이란 브랜드는 프랑스에서 왔다. 다른 핀과는 다르게 묘한 패턴에 아름다움이 담겨있어 좋아한다고. 영롱한 디자인이 계속 빠져들게 만들더라.
[‘Koalition 코엘리션’ 리쉬]
‘프랑스’라는 나라가 주는 이미지 때문인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서프보드와 발목을 잇는 줄을 ‘리쉬’라고 부르는데, 파도 속에서 내가 보드를 잃어버리거나 보드가 나를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 서로를 묶는 안전장치다. 보통은 디자인에 이렇게 공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라. 고작 발목을 묶는 띠지만 꽃무늬 장식이 들어있다. 장착하면 발목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텐데 참 예쁘게 만들었다. 섬세해.
[‘TCSS’ 자켓 16만 원]
[‘TCSS’ 서프핀 14만 4,000원]
[‘TCSS’ 에코백 2만 7,000원]
이곳엔 서핑 액세서리는 물론,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제품이 섞여 있다. TCSS는 서퍼와 아티스트들이 만든 호주 브랜드로 서핑의 쾌활함을 제품으로 표현했다. 서핑에 관심 없는 사람도 관심 갖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에코백과 서핑은 아무 관련 없지만 그래도 멋지니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갖고 싶은 건 서프보드다. 어쩜 이렇게 모든 물건이 흥미로울 수 있을까? DELMAR는 프랑스 서퍼가 만든 것으로 혼자서 보드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소화하는 브랜드다. 그럼 아무래도 서툴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마침 사장님이 말했다. 한 사람이 제작의 모든 과정을 다 잘하기는 어려워 보드의 완성도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의 개성이 매력적이란다. 말씀하시는 눈빛에 사랑이 느껴져 보드를 판매하실 수 있을까 걱정되더라. 그의 눈빛은 분명 내 새끼를 보는 눈빛이었는데, 판매하면 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지 않는가.
호기심에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다. 어차피 내가 타야하는 건 연습용 스펀지 보드인데도 갖고 싶은 보드가 많다. 정말 큰 일이다, 나는 아직 보드 위에서 일어설 줄도 모르는데 장비 병에 걸려버렸다.
매끈한 돌고래 같은 보드 발견.
[FERNAND 서프 보드]
돌고래에 나뭇잎이 붙은 듯한 모양의 이것은 금이다. 보드에 금을 입히다니. 파도에 까이면 마음 아파서 어떡해요. 만든이의 사랑과 머니는 얼마나 큰 걸까요.
[핑크색도 찾았다]
금박이 칠해진 보드는 본디 진열용 보드로 만들어져 그 누구에게도 판매하지 않는 제품이었다고 한다. 허나 사장님의 지속적인 구애 끝에 한국으로 데려왔다. 아직 얼마에 판매할지는 미정. 난 얼마에 데려오셨는지 들었지만, 판매가를 위해 비밀에 부치겠다. 힌트를 드리자면, 대략 이곳의 서프 보드 가격은 200만원 안팎이다.
FERNAND 또한 프랑스 브랜드다. 이곳엔 놀라우리만큼 프랑스산 제품이 많았다. 유럽에서 최초로 서핑을 시작한 곳이 프랑스 남부 비아리츠라는데, 프랑스에 간다면 파리 다음으로 서핑 스팟을 찾아가도 좋겠다.
서핑과 관련 없는 인디 브랜드도 들어와 있다. 주로 한국 아티스트들이 만든 제품으로 가죽 지갑과 의류, 가방 등이 진열돼 있다.
아차, 빵과 커피를 잊으면 안 된다. 카페만으로도 실력 발휘를 톡톡히 하는 곳이다. 프라이데이 무브먼트는 사실 부부가 운영하는 샵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걸 넣어둔 보석함 같은 공간이다. 아내는 빵과 커피를 만들고 남편은 좋아하는 물건을 들여온다. 그럼 두 사람은 서핑하다 만났을까? 아니, 클라이밍하다 만났다. 와우.
서핑을 할 때 나 혼자만 노력해선 파도를 탈 수 없다. 보아하니 파도도 노력해야 하더라. 온몸으로 서로를 눈치채고 부딪혀야 하는 데 늘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재밌다. 클라이밍부터 백팩킹, 이젠 서핑을 즐기는 프라이데이 무브먼트의 다음 즐거움은 뭐가 될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서핑의 재미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 서핑은 강렬해.
FRIDAY MOVEMENT
운영시간
월 – 금 : 10:00 – 19:00
토 – 일 : 12:00 – 21:00
위치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14길 7
About Author
김기은
새로운 서비스와 플랫폼을 소개하는 프리랜스 에디터. 글과 영상을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