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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애플워치가 어울려요

지금쯤이면 알록달록한 아이폰XR이나 강력하고 값비싼 아이폰XS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이 한 김 사그라들었을까요? 오늘은 애플워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9월...
지금쯤이면 알록달록한 아이폰XR이나 강력하고 값비싼 아이폰XS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이 한 김 사그라들었을까요?…

2018. 09. 18

지금쯤이면 알록달록한 아이폰XR이나 강력하고 값비싼 아이폰XS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이 한 김 사그라들었을까요? 오늘은 애플워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9월 12일, 애플이 스티브 잡스 시어터에서 공개한 제품은 아이폰 만이 아니었죠. 애플워치 시리즈4가 등장했습니다. 시리즈1, 2, 3을 합친 것보다 더 파격적인 변화를 감행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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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마트 워치 시장의 성장세는 호들갑스러웠던 첫 등장에 비해 실망스러웠습니다.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긴 하지만 전성기는 아직인 거죠. 당장 주변을 봐도 그래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보다 쓰지 않는 사람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인데, 스마트 워치는 아직도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심지어 콩나물이라고 혹평을 받던 에어팟도 젊은 힙스터들의 귓구멍을 정복하는데 성공했건만 애플워치는 여전히 조금 낯선 물건인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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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5년부터 애플워치를 사용해왔습니다. 이제 쓰면 좋은 게 아니라, 안 쓰면 불편한 지경입니다. 손목을 흘깃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꽤 편리하거든요. 움직이는 걸 죄악으로 여기는 게으른 몸뚱이에 동기 부여가 되어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런 동기 부여라는 게 결국은 면역이 생기는 법이거든요. 새 워치를 손목에 찼을 땐 당장이라도 나이키를 신고 달리고 싶어서 동동거리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그저 디지털 시계일 뿐. “오늘 움직임이 저조하군요, 경화미!”라는 애플워치의 충고도 손바닥을 ‘탁’ 덮어서 무시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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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군가 “그거 쓰면 좋아?”라고 물으면 무심코 이렇게 답해버립니다. “편하긴 한데, 운동 안 할 거면 그냥 그래.” 머릿속에서 스마트 워치=피트니스 워치라는 1차원적인 공식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박수와 운동량, 소모 칼로리, 이동 거리, 고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시계. 근육을 뽐내며 달리는 러너들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땀방울이 보일 것 같아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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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피트니스 기능은 애플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영역입니다. 나이키와 협업한 제품을 선보이며, 애플워치가 얼마나 좋은 피트니스 동반자인지 거듭 강조해왔죠. 수영하며 착용할 수 있을 정도의 방수 성능을 탑재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구요.

여기서 딜레마에 부딪칩니다. 그렇다면 애플워치는 스마트 워치는 건강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자유롭게 뛸 수 있고, 땀 흘릴 준비가 된 사람들만을 위한 기기인가? 이 질문에 대해 애플이 준비해온 대답은 아주 섬세하고 견고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에 대한 것이다”라는 대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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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 시리즈4에 추가된 ‘넘어짐 감지’와 ‘긴급 구조 요청’ 기능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번 키노트에서 아주 재밌었던 부분이기도 하구요. 누구나 일상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넘어지면서 생각보다 큰 부상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거죠. 더러는 넘어질 때 큰 충격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체중을 다시 일으킬 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애플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동작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할 것 같지만 수 천명의 사람들이 넘어질 때의 동작을 분석해야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결국, 사람이 넘어지는 순간에는 어떤 특징적인 모션 패턴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몸이 떨어질 때 사람의 팔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한 거죠. 가속도계와 자이로스코프 센서가 민첩하게 특정 패턴을 분석하게 됩니다. 이 패턴을 바탕으로 애플워치 사용자가 넘어졌다고 판단하면, 화면에 경고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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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애플워치의 착각이었다면 조금 번거롭지만 경고를 해제하면 됩니다. 만약 사용자가 60초 이상 이 경고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긴급 연락처에 알림을 보내고 해당 지역의 응급 서비스에 전화를 걸게 됩니다. 대단한 일이죠. 이 과정에서 놀라운 건 두 가지 입니다. 사람들의 넘어짐을 분석하는 애플의 수고스러움과 덕후스러움. 그리고 몇 초 안에 일어나는 일을 빠르게 파악하는 연산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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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이겁니다. 1세대 모델부터 들어갔던 광학 심박 센서와 함께 전기 심박 센서까지 탑재했다는 사실이요. 심박 체크 기능의 정확도는 광학 센서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문신이 있거나 털이 많아서 광학 센서가 작동하기 힘든 환경에서도 심박수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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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트 스크린에 ‘Electrocardiogram’이라는 글씨가 떠오르자 어마어마한 박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네, ECG. 심전도를 말합니다.

다들 병원에서 한 번쯤 들어본 용어죠? 심전도는 피부 표면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서 심장에서 전해지는 전기 변화를 기록하는 검사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심장에 질환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이 검사 과정을 애플워치 하나로 해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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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법은 간단합니다. 애플워치 시리즈4를 한쪽 손목에 착용하고, 반대쪽 손가락을 측면의 디지털 크라운을 갖다 대고 30초 동안 있으면 됩니다. 후면 크리스탈의 전기 심박 센서와 디지털 크라운에 탑재된 전극을 통해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덕분에 병원 밖에서도 심장 박동 패턴이 정상인지, 심방세동의 징후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본인이 혹은 가까운 사람이 뜻밖의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기능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실감할 겁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가장 아름답게 쓰이는 순간은 이런 걸까요. 이 기능은 새로운 ECG 앱을 통해 사용할 수 있고, 의료 목적이기 때문에 미국에선 FDA의 승인을 이미 받았다고 합니다. 각 국가마다 별도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애플워치 시리즈4의 출시에 맞추어 ECG 기능이 출시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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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애플워치 시리즈4 40mm, 우-애플워치 시리즈3 38mm]

물론 이 밖에도 애플워치 시리즈4의 변화는 많습니다. 케이스 크기를 최소화 하면서 디스플레이 면적을 30% 이상 키웠죠. 덕분에 베젤은 좁아지고 손목 위의 화면의 더 시원스러워졌습니다. 화면이 커진 것에 비해 실제 케이스 크기 변화는 크지 않습니다. 38mm가 40mm 정도로 늘어났어요. 실감이 날 만큼 큰 차이는 아니지만 첫 인상에서 주는 디자인 느낌이 변한 건 사실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본래의 아담한 38mm가 더 예뻐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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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어진 화면을 야무지게 채워 쓸 수 있도록 최대 8개의 컴플리케이션을 담을 수 있는 ‘인포그래프’ 시계 페이스도 공개했습니다. 심박수, 날씨, 심호흡, 자외선 지수, 활동, 음악, 캘린더, 날짜… 온갖 정보를 한 화면에 질서정연하게 표시할 수 있어요. 이쯤되면 시계 화면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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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크라운의 변화도 쌈빡합니다. 크라운을 돌릴 때마다 진짜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꿀렁이는 피드백이 돌아오거든요. 일정 간격으로 스크롤 할 때마다 햅틱 피드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덕분에 기존보다 정교한 클릭이 가능해졌습니다. 음악을 넘길 때도 더 확실한 느낌적 느낌이 옵니다.

저도 가끔 애플워치를 차고 있다 보면 이런 알림을 받을 때가 있어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심박수가 높아졌다는 거죠. 그럼 순간 무슨 일이 있는가 겁이 나 마음을 가라앉혀 봅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스로 다 알 수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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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애플의 행보에는 입체적인 면모가 보입니다. 점점 더 과감한 가격 정책으로 사용자의 지갑을 졸라 매죠. 그와 동시에 전력량의 100%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고, 제품의 교체주기를 늘리겠다고 선언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좋은 하드웨어와 플랫폼을 만들고,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플랫폼의 사용료는 단호하게 가져갑니다. 언제나 말하듯 취하는 게 확실한 장사꾼입니다. 그와 동시에 순진한 진심을 품을 줄도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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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 소리로 아이폰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번 뒤에, 애플워치 개발에 투자하는게 아니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애플의 행보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애플워치에 담긴 의미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 힘껏 달리는 사람, 한 번도 힘껏 달려본 적이 없는 사람, 지금 이 글을 소리로 읽어야 하는 사람. 좋은 기술은 더 많은 사람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오늘의 애플워치는 그렇게 보이네요.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