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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어떤 선언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한국에 산다는 게 참으로 기쁜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라이프스타일 덕후로서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한국에 산다는 게 참으로 기쁜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2018. 09. 13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한국에 산다는 게 참으로 기쁜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라이프스타일 덕후로서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언제나 지름신이 함께 하곤한다. 하지만 동북아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는 대개 1차 출시국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애플 제품들이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잠자고 출시일을 기다리거나, 혹은 귀찮은 직구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batch_boydechanel_4[얏호!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렇다, 샤넬이다! 샤넬의 전투적인 홍보 덕에 아시는 분도 제법 있겠지만 샤넬이 첫 번째 남성 메이크업 라인업을 내놨다. 이름은 ‘보이 드 샤넬’. 9월 1일 런칭이었고, 몇몇 백화점에는 이미 그 전부터 시연용 제품이 깔려있었다. 진짜다. 적어도 우리 동네는 그랬다. 중요한 건 요 9월 1일이라는 날짜다. 사실 원래 ‘보이 드 샤넬’의 정식 출시일은 2019년 1월이다. (글로벌 웹에서는 11월부터 구매 가능하다) 무슨 말이냐고? 현재 보이 드 샤넬을 살 수 있는 건, 대한민국뿐이라는 거다. 오예.

batch_boydechanel_6[내가 바로 샤넬의 소년]

아차 조금 흥분했다. 침착하게 이름부터 짚고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단순히 단어만 보면, ‘보이 드 샤넬(BOY DE CHANEL)’이란 단어는 샤넬의 보이, 혹은 샤넬로부터의 보이 정도의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제품을 바르면 샤넬의 소년이, 혹은 샤넬이 만들어낸 소년이 될 수 있다는 걸까. 샤넬처럼 우아하고 스타일을 가진 그런 소년 혹은 남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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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름의 진짜 의미를 말해주려 한다. 나는 BOY DE CHANEL을 들었을 때 조금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소년(boy)은 불어로 가르송(garçon)이다. 맞다. 꼼데가르송 할 때 그 가르송. 그렇다면 그냥 가르송 드 샤넬이나 혹은 보이 오브 샤넬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보이 드 샤넬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불어와 영어의 애매한 이종교배가 아닌가. 물론 샤넬이 제품명에 영어와 불어를 섞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저 이름을 딱 들었을 때 생각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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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샤넬이라는 패션 브랜드가 존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운 아서 에드워드 카펠이라는 남자가 있다. 그의 별명은 ‘보이 카펠’. 그렇다. 이 남자가 바로 보이 드 샤넬의 시작이다. 코코 샤넬의 첫사랑이자, 불멸의 연인, 영혼의 동반자. 샤넬이 ‘단순히 멋진 것 이상으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추억한 보이 카펠. 그리고 ‘매력적인 남자를 위한’ 샤넬의 첫 번째 메이크업 제품인 보이 드 샤넬. 이 둘이 이름이 같다는 건 참으로 적절하다.

batch_boydechanel_8[문 크리스탈 파워 메이크업]

그럼 이제 본격적인 메이크업을 시작해보자. 오늘 여러분을 위해 가져온 물건은 아이브로우와 파운데이션이다. 사실 이정도면 기초 화장품에 속한다. 이건 아직 화장이 부끄러운 여러분을 위한 샤넬의 세심한 배려다. 코코 샤넬이 그랬다. 럭셔리는 편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럭셔리가 아니라고. 좋아, 그렇다면 정말로 보이 드 샤넬은 럭셔리가 맞는지, 꼼꼼히 따져보자.


파운데이션 – 보이 드 샤넬 르 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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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피부가 유난히 좋은 사람을 우리는 ‘도자기 피부’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러분,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도자기는 거칠거칠하고 표면엔 구멍이 송송 나있다는 걸 아시는지. 표면에 유약을 정성들여 바르고 또 발라야 우리가 잘 아는 반질반질하고 티 없는 도자기가 된다. 여러분의 피부도 마찬가지다. 사람인 이상 여러분의 피부는 완벽할 수 없다. 피부 결이 거칠다던가, 잡티가 좀 있다던가, 모공이 넓다던가, 아무튼 뭐라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거다. 유약도 안 바르고 구웠는데 조선 백자가 나오길 바라면 곤란하다.

ancient-2179091_1280[너희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요 유약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파운데이션이다. 파운데이션은 말그대로 기초가 되는 화장품이다. 피부 결을 다듬고 혹시 모를 잡티와 모공을 잡아 준다. 물론 이게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피부 결이 정돈되는 것만으로도 한결 보기 좋아진다. 연예인이 머리 정리 안하고, 옷은 아무거나 주워입어도 메이크업을 빼먹지 않는 이유가 뭐겠는가! 유약도 안 바르고 막 꾸미고 구워봤자, 빗살무늬 토기가 될 뿐이다. 솔직히 수수한 조선 백자랑, 화려한 빗살무늬 토기.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보기 좋냐는 질문은 따로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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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샤넬이 만든 남성용 파운데이션, 보이 드 샤넬 르 뗑은 제법 질 좋은 유약이다. ‘쿠션 같은 파운데이션’이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듯한데, 쉽게 말해서 커버력도 좋은데, 가볍고 촉촉하다. 남성용 제품들을 써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쩐지 유난히 무겁고, 끈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로 써보게 되더라도 그 찝찝함이 싫어서 꾸준히 사용하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보이 드 샤넬 르 뗑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 산뜻하게 발리고 가볍다. 실제로 바르고 나면 내가 너무 적게 발랐나… 싶어서 만져볼 정도였다. 물론, 만지면 묻어나니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

batch_boydechanel_5[여러분의 눈에게 미안하지만, 따로 모델이 없었다]

흡착력 또한 나쁘지 않다. 꽤나 피부에 착-하고 달라붙어서 다들 내가 뭘 발랐다는 건 잘 모르고, ‘피부가 좋아졌네!’라는 칭찬을 한다. 지속력도 좋아서, 수정화장도 크게 필요없다. 나의 경우에는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한 번, 저녁에 약속을 나가기 전에 한 번 확인하는 정도다. 다만, 꼭 세안을 하고 자자. 성분은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을 위해서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을 자봤는데, 피부에 트러블이 제법 생겼다. 사실 그 와중에도 파운데이션을 바르다가 트러블 생긴 것도 제법 잘 가려진다는 사실에 놀라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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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정화를 위해 보이 드 샤넬의 모델 이동욱님도 첨부한다. 

+ 처음 파운데이션을 써보는 분을 위한 팁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방법에는 크게 손, 브러시, 스펀지가 있는데, 나는 브러시로 쓴다. 손으로 하면 뭉치거나 뜨고, 스펀지는 파운데이션을 흡수하는데, 나는 내 피부에 바르기도 부족한 샤넬 화장품으로 스폰지를 꾸며줄 만큼 풍족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씩 찍어서 피부에 잘 펴 바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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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부색이랑 맞는 게 뭔지 모르겠다면 샤넬 부티크에 가서 한 번 발라 달라고 해라. 정말 잘해준다. 참고로 나는 일본 여행으로 잔뜩 탔다가 요즘에야 점점 밝아지고 있는데 2번째로 밝은색을 쓴다. 그러니까, 어두운 피부도 걱정 없다- 이 말이다.


아이브로우 – 보이 드 샤넬 르 스틸로 쑤르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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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 ‘눈썹의’라고 검색어를 치면 처음 나오는 자동완성 검색어는 ‘눈썹의 중요성’이다. 그 다음이 종류나 기능이고. 그렇다, 여러분. 눈썹은 무척 중요하다. 아무리 잘생긴 사람도 눈썹이 없으면 볼드모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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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은 정말로 영향이 크다. 사람 얼굴에는 생각보다 붙어있는 게 적다. 머리카락, 눈, 코, 입, 눈썹에, 남자라면 수염 정도. 눈코입은 바꾸고 싶으면 수술을 해야 하고, 수염은 마음대로 안 자란다. (믿어도 좋다. 나는 수염을 기른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눈썹은 혼자서 형태를 바꿔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즉, 멋져지기 위해서 반드시 손을 대야만 하는 첫 번째 부위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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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파운데이션과 함께 나온 보이 드 샤넬 르 스틸로 쑤르씰은 여러분이 시도해야 할, 첫 번째 ‘진짜 메이크업’이다. 나도 여러분이 눈썹을 싹 밀어버리고, 그때그때 그리는 건 무리라는 건 안다. 그럼 이걸 어디에 쓰냐고? 여러분의 눈썹엔 반드시 비어있는 부분이 있다. 색칠공부라고 생각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살살 칠하고, 아이브로우 반대편에 달린 브러시로 결을 따라 쓱쓱 문질러주면 끝이다. 참 쉽다. 사선으로 생긴 펜촉이 이 쉬운 과정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디테일을 원한다면, 종 형태로 생긴 브러시로 전체를 다듬을 수도 있고, 끝부분을 통해 디테일을 살릴 수도 있다. 서투른 손짓 덕에 삐져나간 부분도 손으로 문지르면 쉽사리 지워진다. 잘 지워지면 나쁜 거 아니냐고? 걱정 마라. 워터 프루프 기능이 있어서, 땀에는 지워지지 않는다.

batch_boydechanel_3[위 이미지 속 남자는 이동욱이 아니라 나다]

아이브로우를 쓴다고, 더 잘생겨진다거나, 키가 커 보일 리는 없건만,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눈썹은 인상을 정하는 큰 부분이고, 빈틈없이 채워진 짙은 눈썹은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탄탄한 이미지를 만든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여러분의 자신감이 상승할 거라는 점이다. 지금 못난 얼굴을 여러분께 들이미는 나처럼. 훗.

샤넬의 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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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남성용 메이크업 제품이 샤넬에서 발매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쁘다.

이제껏 남성 메이크업 제품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국에도 남성 메이크업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잔뜩 있고, 럭셔리 브랜드로 한정해도 톰 포드가 남성 메이크업 제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샤넬의 이번 발매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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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은 꾸밀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옷에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화장하는 남성’은 소수자들을 위한 단어였다. 분명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남성 화장품의 소비가 가장 활발한 국가고, 실제로 남성 화장품 소비 2위인 덴마크보다 4배 수준의 소비량을 보여주는 국가임에도, 어쩐지 주변에 ‘나 화장해’라고 말하는 남자는 참 보기가 어렵다. ‘화장하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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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렌드는 분명 ‘마초’가 아니라 ‘예쁜 남성’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보검 씨, 임시완 씨를 필두로 한 예쁜 남자 연예인들이 그 예시고, 심지어 ‘마초 연예인’의 대명사인 마동석도 ‘예쁜 걸 좋아하고, 세심함’이라는 게 무기 중 하나일 정도다. 샤넬이 보이 드 샤넬의 최초 출시국을 한국으로 정한 이유도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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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스킨케어 제품이 아닌, 남성용 메이크업 제품을 냈다는 건, 하나의 효시다. 앞으로는 ‘화장하는 남성’가 소수자가 아닐 것이라는 효시. 남성의 섹시함을 표현하는 톰 포드가 남성용 메이크업 제품을 냄으로써 ‘남성도 화장해야한다’며 개혁을 외쳤다면,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를 대표하는 샤넬은 ‘정말 그렇다’며 선언한 셈이다.

우리는 좋건 싫건, 패션 브랜드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의 트렌드인 스트릿 패션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뎀나 즈바살리아와 라프 시몬스의 영향이다. 그들의 시도가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뒤, ‘날티’난다는 소리를 듣던 소수자, 스트릿 패션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주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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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은 “어떻게 남자가 여자처럼 화장을 하냐”며 눈치밥을 먹지만, 샤넬이 이 선언에 동참했다는 것만으로 앞으로의 흐름은 바뀔 수도 있다. 패션업계에서의 샤넬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선언을 따라갈 브랜드는 적지 않다. 이 흐름이 화장하는 남자가 스타일리쉬한 남자로, 언젠가는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내 이 흐름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과거에 이미 샤넬은 패션으로 여성을 한번 해방시킨 바 있다. 혹시 모른다면 에디터 H 의 글을 참고하자. 이번엔 샤넬은 뷰티로 남성을 해방시키려는 모양이다. ‘남잔데, 화장품을 어떻게 써’라는 말을 없애기 위한, 가장 기초가 되는 메이크업 제품들을 내놓은 걸 보니.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지고, 모두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세상을 꿈꾸는, 샤넬을 위한 첫 번째 제품이 바로, 보이 드 샤넬이다. 이 리뷰의 샤넬이 했던 멋진 말로 마무리 하려한다.

아름다움은 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Chane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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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_ 김윤우( IG @yoonoo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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