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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홀릭의 새 맥북 프로

안녕, 여러분. 선량한 앱등이 에디터H입니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많은 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저의 앱등력은 뿌리가 야트막합니다. 이제...
안녕, 여러분. 선량한 앱등이 에디터H입니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많은…

2018. 09. 05

안녕, 여러분. 선량한 앱등이 에디터H입니다. 이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많은 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저의 앱등력은 뿌리가 야트막합니다. 이제 겨우 맥OS 입문 6년차. 어설프죠. 하지만 이미 브라우저 종료 버튼이 오른쪽에 있는 세계에서는 마음이 불안해질 만큼 멀리온 것 같습니다.

애플이 맥북 프로 라인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신제품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어제까지 최고였던 내 맥북이 최고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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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은 박스에서 뜯어서 꺼내도 기분이 밍숭맹숭합니다. 똑같이 생겼거든요. 처음 터치바 모델을 만나던 때의 감동도 없고, 달라진 걸 찾기가 어려울 정도죠. 심지어 무게도 똑같아요. 그럼 대체 뭐가 달라졌을까요? 저도 새로운 맥북 프로를 쓴지 겨우 일주일. 달라진 점을 찾기 위해 신경으로 곤두세우고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만 정리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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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변화는 키보드입니다. 3세대 나비식 키보드가 적용됐거든요. 기존의 매커니즘이 바뀐건 아니예요. 나비식 키보드는 이름처럼 나비의 양 날개 모양을 한 키보드라 어느 부분을 눌러도 치우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눌리는게 특징이죠. 맥북의 두께를 파격적으로 줄이면서 기존의 가위식 키보드보다 더 얇은 키캡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목적한 바는 이루었으나 덕분에 키 트래블이 너무 짧아졌습니다. 손 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타건감이라고 해야할까요. 일반적으로 타이핑을 할 때 기대하는 피드백이 대폭 줄어버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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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계식 키보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채 1mm도 눌리지 않는 야트막한 맥북의 키보드를 싫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악한 애플은 키 스트로크 콤플렉스를 소리로 커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키보드 손 맛을 원한다면!! 타닥! 타닥! 소리로 승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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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 키보드는 꽤 소란스웠습니다. 물론 처음엔 좋았어요. 살짝만 눌러도 ‘타닥타닥’ 부딪히는 소리로 반응이 돌아오니, 뭔가 타이핑이 더 빠릿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소음 때문에 금세 피로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나비식 키보드가 처음 적용됐던 12인치 맥북에선 더 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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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이런 소비자의 반응을 의식한 게 틀림 없습니다. 새로운 키보드는 조용해졌어요. 키캡 밑에 아주 얇은 실리콘 막을 덮었거든요. 덕분에 즉각적인 소음 감소 효과가 느껴집니다. 아주 조용해요. 눌러보면 기묘한 느낌이 들어요. 푹신하다고 하면 과장이겠고, 뭔가 쿠션 역할을 해준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뭔가 더 조용해지고, 더 가짜같아졌죠.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리고 조금만 눌러도 조용히 반응하는 감각이 오히려 가상 키보드와 비슷해졌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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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나면 그 다음 변화는 트루 톤이겠죠. 기존의 주변광 센서가 색온도까지 감지할 수 있게 업그레이드 되어, 주변 조명에 맞게 화면 색온도를 조절해줍니다. 사용자는 눈치채기 어려운 변화입니다.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게 이 기능의 핵심이거든요. 언제 봐도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화면색을 구현해줍니다. 다만, 영상 편집이나 사진 보정 등 정확한 색감을 요하는 작업을 할 땐 트루 톤 기능을 꺼두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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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터치바에도 트루톤이 적용됐답니다.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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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D 옵션도 상당합니다. 15인치 모델은 최대 4TB SSD까지 추가할 수 있으며, 13인치 모델도 최대 2TB까지 끌어올릴 수 있죠. 정직한 자본주의의 대가를 치러야하긴 하지만 저장 공간이 늘어난다는 건 신나는 일입니다. 512GB를 쓰다 2TB로 건너왔더니 참을 수 없는 자유가 느껴집니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세서의 업그레이드나 디스플레이의 변화 보다 가장 와닿는 변화입니다. 작업에 제한이 없다는 느낌이죠.

보통 맥북 프로 시리즈에서 성능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15인치 모델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번엔 13인치 맥북 프로의 업그레이드가 꽤 드라마틱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제가 기본형 i5 모델을 사용하다 i7 프로세서로 점프했으니 공평한 비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8세대 인텔 프로세서가 꽤 인상적인 퍼포먼스 향상을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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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컷 프로X에서 S-Log로 촬영한 영상 클립 4개를 꺼내고, 화면을 네 분할해서 동시에 플레이하며 작업해보았습니다. 물론 이전 세대 맥북 프로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던 작업입니다. 다만 랜더링된 영상을 확인하기 전까지 미리보기 화면에서는 영상 프레임이 뚝뚝 끊겨보이는 현상은 어쩔 수 없었어요. 기존에 버벅거리던 작업 환경이 깨끗하게 플레이되기까지 딜레이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영상 편집 경험이 있는 자라면 ‘편집 결과를 상상하며 작업할 필요가 없어졌다’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처음엔 새로운 맥북 프로의 성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랜더링 속도도 비교해보고, 갖가지 테스트를 해봤어요. 당연히 신형 맥북이 빨랐죠. 하지만 작업 내용에 따라 기대만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랜더링을 빨리 해내는가를 달리기 시합처럼 비교해보는 것보다는, 달리는 과정이 어떻게 쾌적해졌는지를 비교해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PC가 느려지는게 두려워 쓰지 않던 ‘백그라운드 랜더링’ 설정을 켜놓았는데도 영상 편집 과정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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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도 영상이지만 라이트룸에서의 사진 보정 작업도 눈에 띄게 편해졌습니다. 라이트룸은 사진 편집계의 마법 상자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정말 더럽게 무거운 프로그램이죠. 복잡한 보정 작업이나 크롭 과정이 한결 가볍게 이루어집니다. 12인치 맥북을 쓰는 에디터M은 자꾸만 신형 맥북 프로를 훔쳐갑니다. 여기서 라이트룸을 돌리면 너무 빨라서 손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면서요. 보정 후 내보내기 속도도 확실히 빨라졌네요. 이건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개인적으로 맥북을 오래 쓰면 무감각해지는 것 중 하나가 이 빠릿한 읽기 속도입니다. 같은 용량의 SSD를 탑재한 랩톱 중 최대 3.2GB/s의 읽기 속도를 구현하는 제품이 얼마나 될까요. 5GB가 넘는 묵직한 영상 파일도 텍스트 파일 던져넣듯 편집 프로그램 위에 드래그하면 단숨에 읽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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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시 목소리만으로 시리를 불러낼 수 있는 “시리야” 기능도 추가됐습니다. 사실 맥북에선 시리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터치바 단축키에서도 빼고 사용하구요. 하지만 아이폰에서와 같이 목소리 만으로 콘트롤 가능하다면 종종 단순 작업을 위해선 사용하게 될 것 같네요. 시리가 아직 고도의 작업은 하지 못하지만, 심부름은 곧잘 합니다. 다운로드 폴더 열어줘! 화면 밝기 올려줘! 소리 꺼줘! 파이널컷 열어줘! 이 정도는 바로 알아듣습니다. 같은 아이클라우드 계정으로 연결된 아이폰과 맥북을 나란히 두고 “시리야”를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둘이서 눈치싸움을 벌입니다. 서로의 마이크로 제 목소리 볼륨을 파악했을 때 누가 더 가까이 있는지, 누가 대답하는 게 더 합당한지를 두고 말이죠. 결국 둘다 화면을 꿈뻑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한 쪽이 대답하는 구조입니다. 꽤 재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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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쁜 것들을 지적해볼까요? 저는 솔직히 무게나 배터리 중 한 가지라도 개선해주길 바랐습니다. 간절히 말이죠. 13인치 노트북에 1.37kg의 무게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치만 더 욕심이 나는 걸 어쩌겠어요? 무게를 유지했다면 배터리 시간이 1시간이라도 늘어나길 바랐고, 그게 아니라면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주길 기대했습니다. 모든게 그대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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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아쉬운 건 이상할 만큼 팬 소음이 심해졌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로 요란하게 팬이 돌아갈 땐 작업에 부하가 걸리거나 화면 상에서 딜레이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것도 아닌데 말이죠. 작업 속도는 여전히 빠르고 가볍습니다. 그런데 팬은 혼자서 요란하게 돌아갑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일주일 정도 쓰면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혹시 일할 때 티내기 좋아하는 성격인가? 마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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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항상 사랑하는 맥북 프로의 스테레오 스피커는 어쩐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맥북 프로가 굉장히 비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스피커를 생각하면 돈값하는 물건이라는 합리화가 쉬워집니다. 애매한 블루투스 스피커보다는 훨씬 좋은 사운드잖아요? 기존보다 베이스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맥북에서 바로 음악 작업을 하는 사람에겐 꽤 좋은 메리트겠어요. 혼자서 맥북으로 영화를 볼땐 이보다 좋을 수가 없죠. 어깨 왼쪽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스테레오 사운드가 저의 좁은 세상을 가득 채워줍니다. 딱 내 행동 반경에 맞춘 완벽한 영화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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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독한 워커홀릭입니다. 일상과 일을 분리하는데 실패한지 오래구요. 기왕 일에 미친듯 살아야 한다면, 좋은 도구와 함께하고 싶어요. 새로운 맥북과 일주일. 일하기 좋은 나날이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열심히 일할게요. 간단한 사용 소감은 여기까지. 영상 보러 가실까요?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