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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매빅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작은 ‘관심사 필터’라는 게 있다. 어떤 관심사가 기본값으로 설정되고 나면 해당 사물이나 현상만 두드러져 보이는 필터를 말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작은 ‘관심사 필터’라는 게 있다. 어떤 관심사가 기본값으로 설정되고…

2018. 08. 27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작은 ‘관심사 필터’라는 게 있다. 어떤 관심사가 기본값으로 설정되고 나면 해당 사물이나 현상만 두드러져 보이는 필터를 말한다. 스무 살 때 천호동 미니골드에서 귀를 뚫였다. 좁쌀만한 큐빅이 박힌 14K 귀걸이를 귀에 찔러 넣었다. 얼얼한 귓볼을 느끼며 거리로 나오니 사람들의 귀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귀걸이로 넘실대고 있었다.

최근에도 이런 관심사 필터를 경험한 일이 있다. 바로 드론 필터.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드론 맛을 본 뒤론,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드론 장면만 보인다. 항공샷이 나오면 “여긴 드론으로 찍었다! 드론!!!”하고 내 마음 속 설명충이 나대는 통에 극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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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빅 에어로 촬영한 컷]

이쯤에서 포르투에서 살 때 드론으로 찍었던 풍경을 몇 컷 공유해야겠다. 우리가 사용했던 제품은 DJI의 매빅 에어. 430g으로 가벼우며 가방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초소형 드론이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한국에선 한 번도 드론을 날려본 일이 없다. 겁도 없이 유럽의 낯선 도시에서 드론 데뷔전을 치른 것이다. 현지에서 직접 찍어보기 전까지는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바람이 심한 동네라 비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화질에 대해서도 의심이 컸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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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빅 에어로 촬영한 컷]

집 앞 공터에서 첫 시험 비행을 마친 뒤, 우리 모두 외쳤다. “이거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오렌지색 지붕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게 드론의 매력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찍을 수 없는 항공샷은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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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빅 에어로 촬영한 컷]

그때부터 주구장창 날씨만 좋으면 드론을 날렸다. 오래 찍을 필요도 없었다. 촬영마다 10분 정도 찍으면 충분한 컷을 건졌다. 고도를 낮추면 직접 그 도시 안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고도를 높이면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지금 보여드리는 사진들은 매빅 에어로 찍은 4K 영상의 일부를 캡처해 따로 후보정을 거친 것.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초보자도 곧장 적응할 수 있는 쉬운 조작법이었다. 특히 미리 설정된 궤도로 자동 운전되는 퀵샷 기능이 흥미롭다. 피사체만 설정해두면 터치 한 번으로 드라마틱한 전문가급 영상을 찍을 수 있다.

드론으로 오프닝을 불사지른 디에디트의 <어차피 일할 거라면>을 한 번 복습하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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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마음에 들었던 드론을 여즉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서울에 돌아오니 날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빅 에어와의 불꽃 같았던 사랑은 이렇게 잊혀지는 것 같았는데… 별안간 신제품이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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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I가 매빅의 최신 시리즈를 공개했다. ‘매빅2 Pro’와 줌 기능을 지원하는 접이식 드론 ‘매빅2 Zoom’. 내 관심을 사로잡은 건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비싼 쪽. 매빅2 Pro다. 심지어 세계 최초 핫셀블라드 드론이라고 하니 혹할 수밖에. 제조사들이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세계 최초’라는 알량한 타이틀에 집착하는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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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빅2 Pro의 가장 큰 특징은 향상된 화질이다. 1인치 CMOS 센서를 탑재했는데, 상위 모델인 팬텀 시리즈와 같은 크기의 센서를 탑재했다는 뜻. 앞서 말했듯 중형 카메라의 명가인 스웨덴 브랜드 핫셀블라드와 공동 개발했다는 점도 큰 메리트다. 컬러 표현도 훨씬 정교하고 정확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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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기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하이퍼랩스 기능. 하이퍼랩스를 찍으며 피사체 주변을 선회하거나 복잡한 비행 경로를 설정하는 등 드라마틱한 효과도 넣을 수 있다. DJI가 공개한 하이퍼랩스 샘플 중에 특히 멋진 게 있다. 비행하면서 낮과 밤을 교차되는 신비로운 영상이다. 비행경로를 저장해두었다가 각기 다른 시간대에 반복 촬영해 편집한 것. 이 기능은 추후 지원될 예정이라더라.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재밌는 장면이다. 확실히 갖고 노는 재미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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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배 광학 줌을 지원하는  매빅2 Zoom에도 새로운 기능이 있다. ‘돌리 줌 퀵샷 모드’라는 기능으로, 실제론 피사체와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가까워지는 것 같은 재밌는 촬영 기법이다. 말로는 설명하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보면 “와!”소라가 절로 나온다. 드론이 피사체로부터 멀어지는 동시에 줌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확대해 이런 촬영 기법을 흉내 낼 수 있다고.

이런 촬영 기법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 촬영 감독이 아니면 구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일반인들도 이런 촬영을 흉내 내고, 꽤 멋들어지게 영상에 담을 수 있다. 드론 촬영 자체가 전문 촬영자의 영역에서 일반인의 취미 영역까지 넘어온 것이다. DJI는 영리하다. 사람들이 ‘어떤 장면’을 시도해보고 싶어하는지 알고, 귀신같이 그 부분을 긁어준다. “매빅2만 있으면 너도 이런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어…”라는 듯한 악마의 속삭임이다.

매빅2 시리즈는 공기역학적인 면을 더 강조해 재설계됐으며, 전작보다 비행 시간도 길어졌다. 조종기와 드론 사이의 연결에 있어서도 안정성을 업그레이드했다고 한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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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매빅2 Pro 181만 원, 매빅2 Zoom 156만 원. DJI는 옵션질(?)이 상당하기 때문에 본체 가격으로 끝나지 않는다.

추가 배터리와 충전 허브, 차량용 충전기, 프로펠러 등이 들어있는 ‘플라이 모어 키트’는 41만 9,000원이다. 아, 연날리는 것으로 만족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