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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물로 보지마

오늘은 지난번에 소개한 식전주 아페롤 기사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토닉워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지난 주말엔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하이볼을...
오늘은 지난번에 소개한 식전주 아페롤 기사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토닉워터에 대한 이야기를…

2018. 08. 13

오늘은 지난번에 소개한 식전주 아페롤 기사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토닉워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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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하이볼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들렀다. 압구정에 위치한 하이볼 가든.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나 클럽소다 등을 섞어 마시는 칵테일을 말한다.

주문을 하는데 바텐더가 묻는다. 탄산수, 토닉워터, 진저에일 중 무엇을 하시겠어요? “아! 여기 제대로다!” 단번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무엇을 고를지 고민스럽다. 탄산수, 토닉워터, 클럽소다… 다 비슷해 보이는데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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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좀 제대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어차피 술에 타서 마시고 취하는 건데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어허! 모르는 소리. 진토닉, 하이볼, 모히토까지. 많은 칵테일에서 베이스가 되는 이 음료들은 적게는 반 이상, 많게는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베이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진짜 술의 맛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일단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겠다.

  • 탄산수(seltzer) : 영어로 셀쳐. 말 그대로 탄산을 더한 물이다. 클럽소다와 달리 미네랄 성분은 없다.
  • 클럽소다(club soda) : 물에 인공적으로 탄산과 미네랄을 더한 것. 달지 않다.
  • 진저에일(ginger ale) : 진저 비어라고도 한다. 술처럼 들리지만 알코올은 들어있지 않고 생강과 레몬, 고추, 계피, 정향 등 향료를 넣어 만든 적당히 달콤한 음료.
  • 토닉워터(tonic water) : 기나나무에서 추출한 키니네 성분과 탄산 그리고 약간의 단맛을 더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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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읽어보면 알겠지만 역시나 가장 흥미로운 건 토닉워터다. 기나나무 혹은 키니네는 대체 뭘까? 이거 먹는 건가요?

때는 1858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고 전 세계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분과 열기로 들썩였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섣불리 열대 식민지에 정박한 많은 유럽인들이 말라리아로 죽어나갔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마법의 성분이 있으니, 이름하야 키니네(Quinine). 기나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꾸준히 섭취하면 말라리아를 퇴치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본디 몸에 좋은 건 입에 쓴 법. 하지만, 써도 너무 썼다. 말라리아로 죽긴 싫으니 마시긴 마셔야겠는데, 써도 너무 쓴 그대다. 그래서 사람들은 키니네를 물에 타서 마셨다.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토닉워터. 정확히 말하면 인디언 토닉워터(indian tonicwat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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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희석했음에도 토닉워터는 여전히 썼다. 당연하다. 물은 쓴맛을 희석할 힘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영국인들은 그들만의 기지를 발휘해 술을 만들기 시작한다. 1300년대 프랑스와의 백년 전쟁으로 더이상 보르도 와인을 마실 수 없게 되자 만든 것이 바로 포트와인이고, 19세기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고향의 맛 에일이 그리워져 만든 게 바로 인디아 페일 에일(IPA)이 아니었던가. 어차피 씁쓸한 타지 생활, 토닉워터에 씁쓸한 진을 넣어마시자! 니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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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게 진토닉이 시작됐다.

진토닉은 영국인들의 발명품이다. 우리가 가장 즐겨 마시는 칵테일인 진토닉이 사실 세계는 정복하고 싶은데 말라리라에 걸리기는 싫고, 건강은 챙겨야겠는데 쓴맛은 싫은 사람들이 생각해낸 칵테일이라니. 그것도 진을 마시기 위한 게 아니라 토닉워터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생긴거라니.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영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술에 대한 영국인들의 집념은 여기까지. 다행히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훨씬 더 효과 좋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나온 상태고, 토닉워터에 들어가는 키니네 성분은 진짜가 아니라 향을 내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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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토마스 헨리는 프리미엄 토닉워터를 만드는 브랜드다. 천연 키니네 향을 높은 함량으로 넣어 그때 그시절 진짜 제대로 된 토닉워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porto_DSC09966[병에 양각으로 새겨진 토마스 핸리의 약자 TH]

단독으로 마시면 의외로 좀 심심하다. 사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그렇다. 좋고 세련된 맛은 가만히 음미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내가 최고야! 추억의 만화 <요리왕 비룡>에서 보는 것처럼 마시자마자 머리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천지가 개벽하는 경험은 날카로운 첫키스의 순간 맑고 고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것만큼이나 과장된 환상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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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산은 자잘하고, 입을 까끌까끌 거리게 하는 미미한 씁쓸함과 시큼함이 입에 맴돈다. 단맛도 쓴맛도 심지어는 탄산도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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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은은한 맛은 시중에서 가장 흔하게 소비되는 토닉워터인 진로의 그것과 비교하면 단번에 캐치할 수 있다. 진로 토닉워터에서 레모나를 물에 탄 것 같은 시큼함과 비릿함을 맛보고 나니 토마스 헨리가 얼마나 고급스러운 맛인지 깨닫는다.

DSC09955_1[토마스 헨리에는 천연 퀴니네 향이 첨가되어 있다]

천연 퀴니네 향이 첨가된 토마스 헨리 토닉워터와 달리 진로 토닉워터에서는 퀴니네의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진로 것은 엄밀히 말하면 토닉워터라고 말하기엔 좀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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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맛있는 토닉워터를 가장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아페롤에 넣어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세련된 건 없을까? 그때 내 눈에 띈 것이 바로 겨우내 술카트에서 잠자고 있던 핸드릭스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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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릭스는 프리미엄 진으로 요즘 핫하게 뜨고 있다. 아니 사실 뜬지는 몇 년 정도 됐다. 이태원 혹은 경리단에서 핫한 바인지 아닌 지는 이 핸드릭스 진으로 만든 진토닉이 있는지로 갈릴 정도니까. 분명한 것은 오이와 장미의 싱그러운 향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진 중 하나라는 거다. 핸드릭스 진에는 11종의 허브와 향긋한 장미 그리고 싱그러운 오이가 들어가는데, 진토닉에는 핸드릭스가 품고 있는 오이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얇게썬 오이를 가니쉬로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사무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서걱서걱 오이를 썰고 있자니 에디터H와 기은이 코를 벌렁거리며 돌아본다. 오이는 개성만큼이나 호볼호가 강한 채소다. 오죽하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페이지가 있을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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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오이의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은근한 멋이 있는 토닉워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 헨리는 아주 훌륭한 윙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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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완성한 핸드릭스 진토닉. 프리미엄 토닉워터인 토마스 헨리와 역시 프리미엄 진인 핸드릭스 진을 넣었으니 그야말로 초 프리미엄이라 할 수 있겠다. 나폴거리는 오이의 향, 장미의 풋풋함, 고급스러운 쓴맛과 은근한 단맛까지. 사실 이런 거창한 설명은 필요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청량함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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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롤을 시작으로 요즘 칵테일에 푹 빠져있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필요한 것도 많고 레시피도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몇 가지 기본기만 갖춰두면 나머지는 응용과 ‘그까이것 대충’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렵지 않고 쉽고 즐겁고 신난다. 술을 말아 마시는 것이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라니! 

아직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해가 뜨겁지만 알 수 있다. 이 뜨거운 여름도 조금씩 사그러들고 있다는 걸. 여름이 가기 전에 이 싱그러운 칵테일을 몇 잔 더 마셔봐야지. 아직 토마스 헨리가 몇 병 더 남았으니까. 이걸 다 마시고 나면 그땐 가을이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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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