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글래드한 하룻밤

열대야가 시작되면 가출이 간절해진다. 상업용 전기로 에어컨을 밤새 틀어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피서(避暑)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열대야가 시작되면 가출이 간절해진다. 상업용 전기로 에어컨을 밤새 틀어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2018. 07. 18

열대야가 시작되면 가출이 간절해진다. 상업용 전기로 에어컨을 밤새 틀어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피서(避暑)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쾌적한 곳이면 그걸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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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호캉스는 이름만 들어도 기쁜 그곳, ‘글래드 호텔’로 다녀왔다. 글래드는 대림그룹이 만든 호텔 브랜드다. 최근 서울 시내에 불어닥친 부티크 호텔 트렌드의 시작쯤 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문화와 콘텐츠를 장착한 비즈니스 호텔이 줄지어 오픈하고 있지만, 글래드 여의도가 오픈하던 2014년만 해도 새로운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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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고 입장해야 하는 5성급 호텔의 고루함도 없지만, 비즈니스 호텔 특유의 엉성함도 없었다. 글래드 여의도에 처음 방문했을 땐, 객실에 머무를 목적은 아니었고 연회장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호텔에서 행사가 있다기에 아무 생각없이 방문했는데 느낌이 좋더라. 어두운 벽돌로 마감해 톤다운된 건물 외관도 시크했고, 데님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스텝들의 느낌도 좋았다. 서울 시내의 어떤 호텔에서도 찾아보지 못했던 ‘힙’이 있었다.

객실 역시 기대만큼의 공간이었다. 과한 치장이나 화려한 인테리어 따윈 없다. 지극히 실용적인 공간이다. 불필요한 요소는 모두 빼고 간결함으로 무장했다.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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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을 설치할 수 있게 짜놓은 벽면의 마감이 아주 좋다. 서점이나 카페에 설치되어 있을 법한 조명과 선반이다. 덕분에 호텔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차분하고 친근하다. 카펫이 아니라 나무로 마감한 바닥도 이런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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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D’라는 단어가 들어간 명언들이 심플한 액자 속에 담겨 걸려있다. 이 액자는 글래드 인테리어의 상징과도 같다. 심플하지만 꽤 멋지다. 보는 순간 ‘아, 글래드다’싶은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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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가운도 독특하다. 블랙 데님 소재로 만든 차이나 카라의 목욕 가운이라니. 옷깃에 파블로의 명언이 적혀 있다. 젊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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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바뀐 어메니티도 만족스럽다. 에스테틱 브랜드 뷰디아니와 콜라보 어메니티를 만들었는데, 향기롭고 순하다. 외박템 중 가장 챙기기 귀찮은게 클렌징인데, 클렌징 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클렌징 패드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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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양옆의 독서등이나 소파는 일전에 소개한 네스트 호텔의 것과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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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설치된 멀티탭도 그렇다. 휴식도 좋지만, 일하기에도 좋은 호텔이다. 와이파이 속도도 바람직하다.

분위기가 닮아있는 이 두 호텔은, 실제로 국내 두 곳밖에 없는 디자인 호텔스 멤버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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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드 여의도가 서울 시내에서 유일한 디자인 호텔스 멤버라는 점은 오픈 초기부터 좋은 마케팅 포인트였다. 어느 도시의 거리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호텔 복도의 인테리어나 효율성을 중시하면서도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낸 점이 미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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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사진을 찍었던 곳은 얼마 전에 오픈한 글래드 마포다. 최근엔 강남에 생긴 글래드 라이브, 코엑스 점에 이어 빠르게 지점을 늘리고 있다. 일부러 넓은 객실인 ‘글래드 하우스’에 묵었는데,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어수선한 느낌. 넓고 쾌적하긴 하지만 효율적으로 잘 짜여진 공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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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이 많긴 했다. 트롬 스타일러는 하룻밤 내 야무지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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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 카돈까지도 시도는 좋았는데 선 정리가 아쉽다. 임시로 설치해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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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구의 퀄리티는 아주 좋다. 전등이나 책상, 의자까지 취향 좋은 누군가가 하나하나 골랐다는 느낌이다. 의자 하나에도 약간의 위트가 있고 말이다. 호텔키에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떤 공간이 되고 싶은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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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와 우드를 기본으로 한 특유의 컬러 매칭이 브랜드의 분위기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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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고층 객실이라 해가 지는 전망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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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드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호텔 브랜드다. 서울 시내에서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으니까. 그러나 여의도나 메종 글래드 제주 지점에서의 행복한 기억에 비해 다른 지점의 서비스는 많이 아쉽다. 기대가 컸던 강남의 글래드 라이브는 시끄럽고, 좁았다. 글래드 마포는 쾌적했지만 엉성했다. 주차장과 호텔 건물이 따로 떨어져 있는 구조도 아쉬웠다. 국내 부티크 호텔 중 이만큼 브랜드 이미지와 컬러가 분명한 곳은 없다. 어느 지점에 들어가도 통일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편안하다. 조금만 더 서비스의 통일성을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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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주는 경험에 대해서 눈에 트인 이후론, 이런 공간을 만드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실감한다. 화려하고 멋진 인테리어로 치장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힙만 추구하다가는 머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버린다. 특히 하룻밤 내 머물고, 잠들어야 하는 호텔의 경우엔 더더욱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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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과 철학이 확실해야 결과물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글래드는 합리적이지만 철학이 있는 브랜드다. 심플하고 건조하게 완성한 공간 곳곳에 위트와 친절이 츤데레처럼 숨어있다. 호텔보다는 잘 정리된 지인의 집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일이 바쁜 날 에어컨 바람과 푹신한 침대가 그리워 찾아가게 될 만큼 실용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가격대의 호텔이 더 많이 생겼으면. 너를 만나서 GL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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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