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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취향] 지갑을 샀다

간만에 돌아온 에디터M의 지름 리스트 <M의 취향>. 오늘은 지갑이다. 내겐 지갑을 고르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큰 지갑은 질색이다....
간만에 돌아온 에디터M의 지름 리스트 <M의 취향>. 오늘은 지갑이다. 내겐 지갑을 고르는…

2018. 07. 13

간만에 돌아온 에디터M의 지름 리스트 <M의 취향>. 오늘은 지갑이다. 내겐 지갑을 고르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큰 지갑은 질색이다. 잔돈을 들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현금보다 간편한 카드를 선호한다. 쿠폰도 포인트도 안 키운다. 귀찮으니까. 다만 교통카드가 되는 카드가 두 개라, 분리된 두개의 영역이 필요하다. 카드를 꺼내지 않고도 지하철에서 태그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여기까지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고. 사실 진짜 이유는 조금 더 감성적이다. 지름에 이성 따위가 끼어 들 틈이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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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지갑을 바꾸기로마음 먹은 순간, 예전부터 꼭 사고 싶던 브랜드가 떠올랐다. ffroi 프루아. 이름이 어려워 한참을 헤멨지만 결국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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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design the air around you.
당신의 취향이 우리를 택했다면

당신의 분위기까지 디자인 할 것입니다.”

내가 이 지갑을 사기로한 이유다. 좋은 슬로건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지난 토요일 아늑한 침대를 박차고 나와 성수동에 있는 프루아 쇼룸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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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포장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작은 지갑 하나에 지나친 포장이 아니냐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겠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의 마음은 얄팍하게도 이런 것에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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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으로 만든 물건을 좋아한다. 좋은 가죽에서 나는 지독한 향을 사랑한다. 방금 뽑은 새 차에서 나는 가죽 시트의 향기는 나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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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이 매끄럽고 부드럽다.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다. 두 말 필요 없이 좋은 가죽이다. 프루아의 물건엔 모두 최고급 가죽만을 사용한다. 가죽을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지 않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위해 도축되어지거나 자연사하여 남겨진 동물의 가죽만을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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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터블 가죽은 가공하는 과정에서 중금속 대신 식물에서 얻어진 탄닌을 이용해 가공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바로 ‘베지터블’이란 이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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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새것, 오른쪽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태닝이 된 모습이다]

가죽은 시간이 빚는 물건이다. 시간이 지나면 쓰는 사람의 습관이 그대로 물건에 묻어난다. 화학적 가공을 최소화한 가공 방법이기 때문에 사람의 손기름, 땀, 햇빛 등의 외부 요인의 영향이 그대로 가죽에 남게 된다. 그래서 이 지갑의 진짜 매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데 있다. 사용하는 사람의 손때가 타면 탈수록 더 자연스러워지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물건이 되는 게 바로 베지터블 가죽의 진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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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지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진한 가죽 향기가 난다. 조금씩 손때도 묻고 태닝이 되기 시작한다. 워낙 물건을 막 다루는 스타일이라 벌써부터 스크래치 자국이 남기도 하고 얼룩덜룩하지만 이런거에 속상해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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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엔 딱 2장의 카드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다. 주로 쓰는 교통카드는 여기에 넣는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탈 때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낼 필요 없이 반으로 펼쳐 태그하면 되니 간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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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똑딱이가 있어 가방안에서 카드가 쏟아질 일이 없다. 작지만 수납력도 알차다. 안쪽엔 다른 카드와 명함도 여러 장 넣었다. 처음엔 좀 뻑뻑했는데 금세 자연스럽게 늘어나더라. 현금도 몇 만원 정도는 두 번 정도 접어 쏙 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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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한땀한땀 넣은 스티치는 아주 자세히 보아야 미묘한 비대칭이 보인다. 하지만 멀리서 봤을 때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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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마음을 채워준 브랜드와 물건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가 좀 더 듣고 싶어 이 브랜드를 만든 조성준 디자이너에게 잠깐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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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아의 쇼룸이자 작업장은 성수동에 있다. 특이하게도 1층엔 작업실이 지하에 물건을 전시한 쇼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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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쇼룸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한다. 앞치마를 메고 풀질을 하고 바느질을 하는 작업중인 직원에게 쇼룸을 찾아왔다고 말하면, 지하로 안내한다. 요즘 유행하는 스피크이지 바처럼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쇼룸을 이렇게 꽁꽁 숨겨두다니.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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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아의 모든 물건은 1:1 오더메이드로 주문 후에 만들어진다. 때문에 작업장의 중요성은 더 크다. 조성준 디자이너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작업실을 지하로 내리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인 쇼룸을 1층으로 올리는 것보다 지금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충분히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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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쇼룸에서는 상품을 바로 구매할 수도 있고 직접 컬러를 고르고 조합해 주문 제작할 수도 있다. 만약 컬러 선택이 어렵다면,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난 성격이 급해서 제작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만들어진 제품중에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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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에 느닷없이 브랜드 이름의 뜻을 물었다. 사실 프루아(ffroi)란 이름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알파벳 중에 붙여 놨을 때 가장 보기 좋은 것들을 붙이고 이걸 프랑스 식으로 읽은 것이라고 한다.

사실 프루아도 이름처럼 큰 의미를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취미로 만든 팔찌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고 싶어해서 부업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팔기 시작했고 그렇게 프루아는 시작됐다. 널리 알려진 것도 인스타그램에서였다. 좋은 가죽으로 만든 물건을 알아본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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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아에서 지금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백은 에버백(aver bag)이다. 지금 주문해도 2달 후에나 받을 수 있을 만큼 주문이 밀려있단다. 실제로 1층의 작업실에서는 열심히 가방을 만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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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그물백을 만들었다. 사실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해서 이미 여기저기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백이다. 그런데 프루아가 만든 건 좀 다르다. 국내에서 가장 잘하는 뜨개질 장인을 찾아내 물건을 맡겼다. 손잡이 부분엔 프루아의 상징과도 같은 가죽도 덧댔다.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만의 감성을 담아 남들과 다른 물건을 만들겠다는 고집이다. 사실 수지타산이 안맞는 것 같다고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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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품이 쉐입이 굉장히 잘 잡히고 독특하다. 기본적으로 취향이 좋다. 과감한 컬러와 구조적인 디자인은 건축과 곤충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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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래블 라인도 새롭게 런칭했다. 무겁고 더워보일 수 있는 가죽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아무때나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한 라인이다. 가죽보다 좀 더 젊은 감각이다.

마지막으로 프루아를 어떤 사람들이 샀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 브랜드에 상관 없이 진짜 좋은 물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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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H와 나는 남들이 모두 퇴근한 야심한 새벽 사무실에 남아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 하곤한다. 우아해지고 싶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부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통장에 더 많은 0이 찍히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명품백으로 날 휘감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프루아 같은 물건으로 내 주변을 채우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좋은 가죽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깊은 색과 질감을 갖게 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디에디트를 하는 이유이자, 내가 끊임 없이 취향을 찾아가는 이유다.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