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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좋아해요, 그랩픽

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앱 리뷰를 준비했어요. 아마 디에디트 독자분들은 다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아날로그를 동경하며 디지털을 사모하는 게 우리...
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앱 리뷰를 준비했어요. 아마 디에디트 독자분들은 다 좋아하실…

2018. 06. 22

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앱 리뷰를 준비했어요. 아마 디에디트 독자분들은 다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아날로그를 동경하며 디지털을 사모하는 게 우리 인생이잖아요?

사실 제가 지난 4월쯤, 포르투갈행을 앞두고 병을 하나 앓았어요. 바로 ‘필카병’. 그때 약간의 여윳돈이 생겼는데 이걸 통장에 고이 모셔두어야겠다는 생각 따윈 제가 할 수 없잖아요? 당장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았는데, 그 미지의 영역이 바로 필름 카메라였던거죠. 그때부터 집요한 디깅을 시작했습니다. 지드래곤 카메라부터 라이카 미니룩스까지. 단종된 제품들이라 중고나라를 열심히 뒤지고 다녔습니다. 최근의 아날로그 붐을 타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고, 허위 매물도 많았죠. 중고 거래에 익숙지 않은 저는 결국 필카 구입을 포기하고 돈을 다른데 탕진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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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음 속에서 계속 아쉬움이 남았어요. 미러리스로 찍은 사진들을 모두 필름 느낌으로 보정하는 단계에 이르렀죠. 그리고 이 운명같은 앱을 만나게 됩니다. ‘Grabpic’이라고 쓰고 ‘그랩픽’이라고 읽는답니다.

준비물은 하나, 지금 여러분이 손에 쥐고 있는 그것. 스마트폰이에요. 자, 그랩픽 앱을 다운로드 합시다. 이제 우리의 손전화기는 필름 카메라로 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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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랩픽은 일종의 디지털 필름 앱이에요. 앱 안에서 디지털 필름을 구입하면 종류에 따라 다른 느낌, 다른 색감으로 촬영할 수 있어요. 지금은 후지필름 특유의 색감을 잘 표현해주는 DAY24와 더 쨍하고 톡톡 튀는 색감의 SUMMER 두 가지를 판매중입니다. 아마 필름 종류는 계속 늘어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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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주로 DAY24 필름으로 촬영했어요. 후지 필름이나 카메라 색감의 특징이 초록을 아주 예쁘게 표현해준다는 거예요. 날씨 좋은 평일에 공원에 가서 사진 찍고 놀았더니 나무나 하늘의 컬러가 곱게 잘 담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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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사진 필터 앱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죠? 그치만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스마트폰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주는 앱이라고. 디지털 필름은 진짜 필름과 똑같아요. 1롤에 24장을 촬영할 수 있어요. 한 번 찍고 나면 취소할 수도 없구요. 그러니까 그냥 스마트폰 사진 찍듯이 아무렇게나 찍으면 안 돼요. 한 장 한 장, 좋은 기억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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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앱 UI가 아주 세련된 편은 아니에요. 좋게 말하면 복고풍이고, 나쁘게 말하면 살짝 촌스러워요. 근데 전 이 느낌이 좋더라구요. 촬영한 사진은 좌측에 네거티브 필름으로 기록이 남아요. 아날로그의 경험을 스마트폰 화면 안에 녹여낸 솜씨가 제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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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을 다 찍고 나면 필터가 입혀진 사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배송지를 입력하라는 화면이 나타납니다. 여기에 주소만 입력하면 며칠 후에 ‘진짜 사진’을 받아볼 수 있어요. 스마트폰에서 찍은 디지털 파일의 사진이 진짜 사진으로 인화되어 돌아오는 거예요. 이 과정이 너무나 쉽고 간편해서 놀라울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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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렇게 봉투에 담겨 우편으로 도착해요. 사무실 1층 우편함에 사진이 도착한 걸 보고 설레는 마음에 얼른 집어왔어요. 구겨지지 않게 두꺼운 종이를 함께 넣어주는 센스도 마음에 들어요. 배송은 4일 정도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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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명하고 쨍하게 담긴 색감이 인상적이네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정말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인화한 것처럼 선명하고 풍부한 색감이에요. 세 에디터가 각자 찍은 촬영한 사진을 뜯어보며 한참을 시시덕댔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이미 확인한 사진인데도 직접 손에 쥐어보는 건 다른 맛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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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24장을 찍을 수 있는 1롤이 4,900원이에요. 가성비에 목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진짜 기분 좋은 가격 아닌가요. 오늘 점심에 먹은 탄탄멘이 8,000원이었는데 24장의 추억을 남기는 값은 훨씬 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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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는 불편하고 번거로운 취미에요. 사진을 찍는 과정도 디지털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죠. 변수도 많구요. 게다가 사진을 인화하고 찾아오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손이 많이 가요. 그랩픽은 이 번거로운 과정 중에서 ‘즐거운 것들’만 뽑아서 디지털에 옮겨놓은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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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불편하고, 적당히 쾌적하죠. 사진 한 장 한 장을 쉽게 소비할 수 없게 만드는 약간의 허들과 필름 인화 과정을 간편하게 줄인 유통망이 만났다고 설명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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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와 코펜하겐에서 찍은 사진도 인화해봤습니다. 날씨 좋은 날 SUMMER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니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네요. 동화 같은 풍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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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나온 사진은 사무실 한 쪽에 걸어두었습니다. 이런 게 실물 사진의 장점이죠. 항상 시선이 닿는 곳에 걸어둘 수 있고, 기억을 되새기고 싶을 때 손으로 잡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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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필름 카메라처럼 날짜나 장소를 오른쪽 하단에 새길 수도 있어요. 저는 귀여운 복고 감성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에디터M은 사진을 가려서 싫다고 설정에서 빼버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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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면서 아쉬웠던 건 24장의 사진을 전부 다 찍기 전에는 다시 첫 화면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에요. 만약 두 가지 필터를 왔다갔다 오가면서 촬영하고 싶다면 그건 불가능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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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을 통해서 아직 출시되지 않은 흑백 필름으로 사진 몇 장을 인화해 볼 수 있었는데, 이것도 느낌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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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빡하게 표현하자면 아주 저렴한 값에 필름 카메라를 얻은 기분이에요. 물론 진짜 필름 카메라는 또 느낌이 다르겠죠. 그래도 진짜 필름을 흉내 낸 디테일들이 곳곳에 보여서 감성을 채워주기엔 충분합니다. 사진 필터도 적절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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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G7으로 촬영한 그랩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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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X으로 촬영한 사진]

디지털 필름마다 특유의 색감으로 사진을 보정해주긴 하지만, 촬영에 사용하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색감에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아이폰X과 G7으로 촬영해봤는데 같은 필터라도 결과물이 조금씩 달랐어요. 조금 더 필름 느낌의 자연스러운 색감을 추구한다면 아이폰으로 찍는 게 더 마음에 들 거예요. 채도가 강하고 화려하게 나오는 건 G7입니다. G7으로 촬영할 땐 SUMMER 필름을 사용하면 붉은색이 너무 과하게 표현되니까, DAY24로 촬영하는 게 더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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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벌써 3롤째 찍고 있어요. 에디터M도 2롤을 꽉 채웠네요. 리뷰를 끝냈더니 사진 부자가 됐어요. 우리가 여행지에서 본 풍경, 잘 나온 서로의 사진, 걸어가며 만난 재밌는 간판, 출근길에 찍은 지하철. 괜히 감성 포토그래퍼가 된 기분으로 이것저것 찍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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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이상하게도 이것. 지하철이 막 출발하며 창에 비친 모습이 담겨서 이중노출 사진 같지 않나요? ‘필름 사진’의 전형적인 색감인 것 같아서 괜히 애정이 가네요. 필름 사진에 향수를 가진 분들은 한번 쯤 써보시길. 쉬워요. 예쁘구요.

Grabpic
Store – iOS / Android
Point – 필카병엔 그랩픽을
Price – 필름 1롤 4,900원
Size – 31.6MB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