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안전한 나의 판타지

안녕 디에디트의 노예 김작가다. 여기는 동방의 작은 불빛,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다. 오늘은 이베리아반도의 보석,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머물고 있는 디에디트를 대신해...
안녕 디에디트의 노예 김작가다. 여기는 동방의 작은 불빛,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다.…

2018. 05. 31

안녕 디에디트의 노예 김작가다. 여기는 동방의 작은 불빛,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이다. 오늘은 이베리아반도의 보석,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머물고 있는 디에디트를 대신해 서울의 판타스틱한 공간을 소개하려 한다. I. SEOUL. U

porto_re23_1porto_re23_9[안전가옥 1 카페에 있는 지도텍스트를  읽어보면 실제 성수동 일대의 건물명이 표기돼 있다]

지난번에 소개한 곳은 살롱, 이번에는 도서관이다. 그런데 여기가 조금 특이하. 이름은 안전가옥. 정체는 놀랍게도 ‘장르문학 라이브러리’다.

하지만 안전가옥를 두고 그저 ‘도서관’이라고만 표현하는 건 반쪽짜리 설명이다. 얼마나 특별한 역할을 하는 공간인지는 천천히 소개하겠다. 일단! 입구부터 차근차근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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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은 여러 공장이 들어서 있는 성수동에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안전가옥을 찾으러 가는 길에 정말 길이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끝없이 들었다. 도저히 카페와 비슷한 공간이 나올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공장과 공장을 지나 코너와 코너를 꺾고 나서야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이미지의 입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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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한 날에는 풀을 정리한 상태라 입구가 그리 울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풀이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다고 한다. 풀과 나무 덕분에 안전가옥은 주변과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안전가옥을 운영하고 있는 분에게 물어보니 정말 그런 의도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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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지금보다 눈에 띄지 않게 기획했다고 하더라. 금주법 시대에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스피크이지바(Speak-easy bar)’같은아는 사람만 들어오고 모르는 사람은 지나가는 숨겨진 공간말이다. 간판을 눈에 띄지 않게 설치해놓은 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입구의 시각적인 이미지는 <반지의 제왕> 나오는 팡고른 숲을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한다. 팡고른 숲은 오래된 나무들이 사는 신비롭고 우거진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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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반지의 제왕>속 팡고른 숲]

이곳을 내가 판타스틱한 공간이라고 소개한 이유다. 판타지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입구에서부터 공간이 장르문학을 테마로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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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이라는 이름도 이러한 테마와 연관이 있다. 요즘보다는 덜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판타지, 추리, SF 같은 장르 작품성이 없고 가벼운 것으로 낮게 보는 분위기가 존재했다. 안전가옥이란 이름은 모든 취향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어른이 판타지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네 나이가 몇살인데 그런 보고 있냐 손가락질하지 않고 서로의 취향을 편견없이 오롯이 인정하는 . 이곳이 바로 안전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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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크게 군데로 구분할 있다. 일반 손님이 이용하는 라이브러리, 작가들이 이용하는 스튜디오. 이곳은 장르문학 라이브러리이지만, 동시에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이기도 것이다. 위에서 단순히 도서관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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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을 위한 공간은 스튜디오 멤버십에 가입한 입주작가들만 사용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일반 손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라이브러리만 이용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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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를 이용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시즌패스 멤버십을 구입하는 것이지만,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용하지 못하는 아니다. 음료를 주문하면 2시간 동안 이용할 있고, 2시간이 지나면 30분당 1500원이 부과된다. 시즌패스 멤버십에 가입하면 무제한으로 이용할 있으니, 자주 같다면 그것도 괜찮은 선택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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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곳곳에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이 준비되어 있다. 장르문학 외에도 <슬램덩크> 같은 만화책도 있고, 과학과 관련된 책들도 보인. <반지의 제왕> 일러스트북처럼 보이는 희귀한 책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오로지 안전가옥 안에서만 읽을 있었다. 책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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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도 흥미롭다. 안전가옥은 분기별로 테마를 정해서 인테리어에 반영하고 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신비한 식물 테마였다. 그래서 공간 곳곳을 식물로 인테리어 했더라. 지난 분기에는 요괴, 분기에는 달이었다. 언젠가마법 테마가 된다면 도서관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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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장르문학을 싫어한 적도 없지만 열광해본 적도 없. 그냥 적당히 좋아했던 편이랄까. 그저 한시대를 풍미했던 <해리포터> <퇴마록> 같은 작품을 놓치지 않고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즘의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니 모두 장르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탐정이 추리를 하고,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이야기가 아니면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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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의 매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비현실적인 껍데기를 쓰고,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벤져스: 인피티니워> 보면서 비뚤어진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전가옥을 운영하는 분에게도 장르문학의 매력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해주셨다.

현실세계에서 보기 힘든 설정이 있지만, 오히려 현실과 맞닿아있어요. 예를 들어, <스타트렉>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안에는 타문명과 인종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요. 우리 모습을 크게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장르에요.”

오늘 밤에는 감정을 먹먹하게 하는 에세이를 잠시 덮어두고, 오랜만에 권법이 난무하는 무협소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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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