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디지털 도어락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했다. 덜렁이인 나는 열쇠를 자주 잃어버렸는데, 그때마다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가족 중 누군가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타박하며 열쇠를 운동화끈에 묶어 내 목에 걸어주셨다. 열쇠 목걸이는 내가 달릴 때마다 내 명치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었지.
여전히 덜렁거리는 나에게 그때를 추억할만한 물건이 하나 생겼다. 내가 열쇠만큼이나 자주 잃어버리는 물건인 라이터를 위한 간지 넘치는 가죽 케이스다. 내 목에 라이터 케이스를 걸어준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요즘 엄마보다 더 자주 보는 에디터H. 아무래도 에디터H는 내가 맨날 라이터를 찾아 가방을 뒤지는 모습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라이터 가죽 케이스: 목에 걸 수 있음. 선글라스 걸이로도 활용 가능.
지난주 우연히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발견한 이 멋스러운 물건은 헤비츠(hevitz)의 제품이다. 헤비츠는 가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일종의 가죽공방인데,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쓸 수 있는 튼튼하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헤비츠의 목표라고.
이 라이터 케이스는 실제로 헤비츠 직원들이 라이터 하나도 ‘헤비츠스럽게’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이다.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반응이 좋아 이렇게 어엿한 제품으로 판매까지 하게 되었다니 재밌다.
소재는 소 어깨 부분만을 사용한 베지터블 가죽이다. 표면에 특별한 가공을 하지 않아 가죽 본연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고, 손에 쥐면 부드럽게 착 감기는 맛이 있다. 이 가죽은 오일 성분이 많아 오래 사용하고 내 손때가 탈수록 점점 더 멋져질 것이다. 햇살도 좀 쐬고, 서울의 매연도 좀 묻히고, 손기름도 더해서 얼른 진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편의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BIC 라이터도 한 세트다. 비싼 건 아니지만 공짜는 언제나 기분이 좋은 법. 게다가 이 멋진 가죽 케이스 안에 들어있으니 평범한 라이터도 특별해 보이는 기분. 안타깝게도 스트랩은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스트랩이 많이 비싸지 않은데다, 이건 목에 걸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으니 스트랩도 함께 샀다(다시 한 번 은혜로운 에디터H님께 감사를).
아, 얼마전 에디터H가 기사를 통해 내 담배 케이스를 욕보였다(그 기사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모욕을 당하기도 했고, 마침 지퍼가 고장 나서 제 구실을 못하던 차라 새로운 담배 케이스도 마련했다. 렌토(lento)의 ‘슬로우 파우치’로 6,500원이란 착한 가격이 특징. 100% 재활용되는 타이벡(Tyvek) 소재로 만들었는데 종이처럼 가볍지만 찢어지지도 물에 젖지도 않는다. 허허. 라이터 케이스에 담배케이스까지 생기다니. 이건 뭔가 나라에 세금을 더 열심히 내라는 신의 계시인가 싶기도 하고…
헤비츠 라이터 케이스 & 뉴 스트랩 Ver.3
Price – 케이스 9,000원 / 스트랩 7,000원
P.S 다음에 지르고 싶은 물건
헐벗은 내 리디북스 페이퍼에 멋스러운 옷을 입혀줘야지. 헤비츠 리디북스 페이퍼 케이스 9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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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