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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에디터H와 나는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한다. 평일 내내 엄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는 적어도 금요일 밤과 토요일엔 연락을 뚝 끊는다....
에디터H와 나는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한다. 평일 내내 엄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2018. 01. 28

에디터H와 나는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한다. 평일 내내 엄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는 적어도 금요일 밤과 토요일엔 연락을 뚝 끊는다.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생사확인을 한다. 월요일을 준비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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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H는 넷플릭스의 것이다. 문득 에디터H가 궁금해지면 넷플릭스에 접속해 그녀의 프로필을 훔쳐본다. 지금 보고 있는 영상과 넷플릭스가 추천하는 큐레이션을 슥 훑는다. 요즘 뭘 좋아하는지 빤히 보인다. 남의 머릿속을 보는 건 짜릿하다. 거기엔 나와 전혀 다른 H의 세계가 있다. 적어도 주말만큼은 나보다 넷플릭스가 H를 더 잘 알고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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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넷플릭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주, 영하 13도의 한파를 뚫고 넷플릭스의 집에 다녀왔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가지고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지금 넷플릭스가 내 앞에 들이대는 이 컨텐츠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선별 되었는가.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컨텐츠를 큐레이션하는 알고리즘에 대해 약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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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에 마련한 넷플릭스 하우스는 굉장히 잘 꾸며둔 공간이었다. 얼마 전, 재정주행을 시작한 시트콤 <프렌즈>의 아지트 ‘센트럴 퍼크(central perk)’부터, <기묘한 이야기>의 윌의 거실까지. 나같은 넷플릭스 덕후의 인증샷을 부르는 깨알같은 재미가 있었다. 막내는 <더 크라운>의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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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게 너무 많다는 말은, 볼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랑 똑같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큐레이션에 장점을 두는데는 여기 그 이유가 있다. 아직 함께할 네 명의 파트너를 찾지 못해 넷플릭스 가입을 하지 못했다는 막내는 이번 행사를 다녀오고 나서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물론 아직 파트너는 구하지 못한 것 같지만, 사뭇 자랑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처음 건넨 말은 “저 이제 뭐 보죠? 추천해주세요.”였다.

24시간 마다 바뀌는 넷플릭스의 추천리스트는 굉장히 중요하다. 굶주린 하이에나 처럼 무언가 보려고 들어온 사용자에게 군침도는 먹잇감을 제공하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바로 떠나버릴 수도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패는 시청자를 얼마나 긴 시간동안 잡아두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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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유혹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파악해야 한다. 상대가 적극적인 사람을 좋아하는지, 은근하게 어필하는 걸 좋아하는지 분류해야 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우리를 분류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적용할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거주 지역, 성별, 나이 같은 인구통계학적인 자료가 컨텐츠 취향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에디터H와 나는 모두 넷플릭스 헤비 유저다. 주말엔 넷플릭스를 끼고 산다. 우리는 현재 모두 서울에 살고 있고, 여자고, 나이대도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의 취향은 비슷한듯 다르다. 주말이 지나고 에디터H가 꿀잼이라고 추천했던 드라마가 내 입맛에 딱 들어맞았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H 미안).

 ngf_2 ngf_1[위는 H의 넷플릭스 메인 홈스크린 아래는 나(M)의 홈스크린]

만약 단순하게 인구통계학적인 수치로 우리가 좋아 할만한 컨텐츠를 추천한다면, 우리에게는 비슷한 홈스크린이 떠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H와 나의 화면은 이렇게나 다르다.

넷플릭스는 수많은 사용자를 분석한 결과 인구통계학적인 자료는 사실 컨텐츠 취향과 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80세의 아이슬란드에 사는 할아버지와 서울에 사는 10대 소녀의 취향이 같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장 정확하게 취향을 말해주는 방법은 그동안 시청한 컨텐츠를 기반으로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묶는 일종의 취향군(Taste Clusters)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영상을 추천하는 거다. 수많은 교집합의 모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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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착안해 <기묘한 이야기>에는 나라별로 다른 섬네일을 적용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어떤 썸네일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 퀴즈를 냈는데, 내 취향은 브라질이었다.

넷플릭스가 바꾼 것은 단순히 플랫폼 만이 아니다. 이제 40분짜리 드라마 한 편을 보기 위해 10분의 광고 시간을 기다리거나, 일주일을 꼬박 기다리던 시절은 지났다. 이전에 컨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일렬로 늘어선 ‘선’의 형태라면, 1개의 시즌을 통째로 뿌려주는 넷플릭스의 방식은 ‘면’이다. 

여기엔 국경도 성별도 피부색도 없다. 오직 취향을 토대로 추천하는 알고리즘 덕분에 전세계의 다양한 컨텐츠들이 국경없는 넷플릭스를 통해 둥둥 떠다닐 수 있다.

여기서 넷플릭스가 역할은 ‘판’을 까는 거다. 감독에게는 창작의 자유를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넷플릭스를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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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아직까진 넷플릭스의 콘텐츠 추천 리스트가 내 취향을 100% 이해하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엔 적어도 나의 매 주말을 모두 바칠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점점 더 내 취향을 많이 수집하고 나에 대해 더 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그때를 위해, 난 그저 넷플릭스를 볼 뿐.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