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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걸 환영해

세계 여러 도시의 애플스토어에 가봤다. 헤아려보면 모두 멋진 기억이다. 런던, 파리, 베를린, 도쿄, 뉴욕… 각 도시에서 가장 상징적인 거리에 새겨져...
세계 여러 도시의 애플스토어에 가봤다. 헤아려보면 모두 멋진 기억이다. 런던, 파리, 베를린,…

2018. 01. 25

세계 여러 도시의 애플스토어에 가봤다. 헤아려보면 모두 멋진 기억이다. 런던, 파리, 베를린, 도쿄, 뉴욕… 각 도시에서 가장 상징적인 거리에 새겨져 있는 애플 로고를 마주할 때면 알 수 없는 경외심마저 들었다. 각각의 스토어가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잘 보여주는 개성 있는 공간이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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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 당한 직후.jpg]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래 전 바르셀로나에서다. 카탈루냐 광장에 위치한 애플스토어에서 나는 큰 번뇌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사용하던 아이폰6 플러스를 소매치기당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현지 경찰서에 찾아갔더니 애플스토어에 가서 내가 사용 중이던 기기의 인증 내역을 가져오라더라. 그래서 지니어스바에 가서 짧은 영어로 내 고통을 알렸다. 불행히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당시 여러 대의 아이폰을 사용 중이던 탓에 정작 도둑맞은 단말기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체념은 빨랐다. 이 고통을 벗어던지기 위해 쇼핑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애플스토어 안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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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베를린]

반듯한 나무 책상을 둘러싼 사람들은 흡사 대학교 때나 보던 스터디 그룹 같았다. 한 가지 더 눈에 띈 것은 우리 엄마 아빠 뻘은 족히 넘는 머리 희끗한 만학도들이 많았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맥북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배우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근사했다.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 도서관 같았다. 대체 다들 뭐 하는 걸까 고민하며 스토어를 떠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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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유니언스퀘어]

무엇이든 온라인으로 뚝딱 주문하는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 오픈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애플스토어 자체가 주는 몇 가지 이점이 있긴 하다. 모든 제품군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으며, 지니어스 바를 통해 빠른 하드웨어 점검을 받을 수도 있다. 그간 한국의 애플 사용자들을 서럽게 했던 몇 가지 문제가 해결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애플스토어는 이런 물리적인 서비스를 넘어 문화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 기기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직접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건 애플이 아주 잘하는 마케팅 중에 하나인데, 그들이 만든 공간에서는 이 ‘감성 문화 마케팅’의 포텐셜이 그야말로 폭발한다.

실제로 가로수길 애플스토어의 오픈 첫날부터 다양한 세션이 마련되어 있다. 뮤직 메모로 노래를 녹음하는 방법이나 인물 사진 모드를 까리하게 활용하는 방법, 클립스 앱으로 동영상 스토리 텔링을 하는 방법 등. 각 세션은 공개와 동시에 마감이 된 상태다. 이 수업은 무료고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흥미가 동한다면 여러분도 신청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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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루브르 박물관 애플스토어]

아름다운 이야기만 늘어놓았으니 현실적인 얘기도 해보자. 애플스토어는 어느 도시든 가장 상징적인, 번화한 곳에 자리잡는다. 어떤 곳에선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사용해 클래식한 정취를 뽐내고, 어떤 곳에선 애플 특유의 유리 건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지인들도 여행자들도 애플스토어를 찾는다. 가장 땅값 비싼 곳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얘기다. 이보다 좋은 광고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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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플래그십 스토어를 입점시키는 가로수길을 택했다. 교과서적인 답안이다. 개인적으론 좁은 도로에 수많은 욕망이 투영되어 과대평가된 상권이라고 생각한다. 스물 여덟 이후론 잘 안가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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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애플스토어가 들어섰으니 영하 10도를 넘어선 강추위 속에서도 찾아가는 수밖에. 밖에서만 바라보던 애플 가로수길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훨씬 근사했다.

창가에 줄지어선 가로수는 스토어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요소다. 7.6m의 유리 파사드 설계 덕분에 빛이 아름답게 들어옴은 물론 실외의 풍경이 실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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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어 중앙은 어디서나 그렇듯 애플의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모든 제품의 사용법이나 착용법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사실, 타국의 낯선 도시에서 봤던 스토어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는 조금 실망했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에도 무려 14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더라. 심지어 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를 모두 합치면 15가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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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바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는데, 오히려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스토어 이곳 저곳에서 지니어스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구조였다. 지니어스는 애플 하드웨어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직원을 말한다. 기기에 문제가 생기거나 의문점이 있다면 미리 예약하고 찾아가 상담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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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가로수길의 양옆 벽은 ‘애비뉴’라고 부른다. 흔히 말하는 ‘윈도우 쇼핑’의 경험을 옮겨둔 곳이다. 그 벽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카테고리의 서드 파티 제품과 액세서리를 구경한다. 스토어 바깥부터 길이 이어지는 듯한 투명함이 인상적이다. 나는 더 이상 애플 스토어에서 살 것이 없다고 믿었는데, 이 애비뉴를 따라 걷다 또 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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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사려고 했던 맨프로토의 미니 삼각대와 에디터M에게 선물로 줄 에어팟을 샀다. 뜻밖에 국내 첫 애플스토어 구매자의 타이틀까지 차지해버렸다. 주위의 모두가 첫 구매자의 탄생에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해외 어느 스토어를 가도 느끼는 거지만 애플스토어의 스텝들은 밝고, 흥이 많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바깥 세상과는 다른 공기가 흐르는 곳 같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만 뽑는 걸까, 이런 사람들로 교육하는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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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를 견디며 애플스토어 첫 방문을 마쳤다. 내가 사는 도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첫 스토어가 생겼다. 오래 기다린 일이다. 막상 생기고 나니 이깟게 뭐라고 그리 호들갑을 떨며 기다렸을까 싶기도 하지만, 열심히 사는 한국의 앱등이 여러분에게 좋은 서비스와 추억이 되길 바라본다.

우리 모두 언젠가 가로수길에서 우연히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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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