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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앱

아이폰 화면에 얼굴을 박고 꼬박 하루를 보냈다. 화면 이곳저곳을 신중하게 문지르다가, 엄지와 검지를 오므리고 펴고. 그러다 또다시 문지른다. 목뒤가 뻐근할...
아이폰 화면에 얼굴을 박고 꼬박 하루를 보냈다. 화면 이곳저곳을 신중하게 문지르다가, 엄지와…

2018. 01. 22

아이폰 화면에 얼굴을 박고 꼬박 하루를 보냈다. 화면 이곳저곳을 신중하게 문지르다가, 엄지와 검지를 오므리고 펴고. 그러다 또다시 문지른다. 목뒤가 뻐근할 만큼 집중한 결과는 고작 몇 장의 합성 사진이다.

오늘은 그 유명한 <Enlight Photofox>를 소개해볼까 한다. Enlight Photofox는 iOS용 사진 편집 앱이다. 일반적인 사진 앱들이 사진의 명도나 대비를 조절하고 드라마틱한 필터를 통해 보정하는 기능에 충실하다면, 이 앱은 좀 다르다. 물론 기본적인 기능은 치밀할만큼 다 갖추고 있다. 색조와 채도를 만지고, 필터를 입히고, 레이어를 덧씌워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포토샵의 복구나 픽셀 유동화 기능도 가볍게 따라 할 수 있다. 터치 몇 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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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은 목표(?)를 향해 가는 양념에 불과하다. Enlight Photofox의 목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진들을 이용해 아주 기발하고 초현실적인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평범한 풍경 사진에 우주의 기운을 불어넣고, 손바닥 안에 하늘의 별과 달도 따다주고, 구름 위를 걷게 만들 수도 있다.

필요한 건 상상력과 모험정신. 그리고 약간의 공부다. 모바일 앱의 장점이자 단점은 최소한의 UI로 최대한의 기능을 담아야 한다는 것.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 안에 정신 사납게 수십 개의 버튼을 배치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인지 기능이 많은 사진 편집 앱을 처음 열었을 땐,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뭘 눌러야 하지? 어쩌라는 거지??

난이도가 높아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다, 마음 잡고 몇 가지 기능을 익혀봤다. 새 제품을 사도 사용설명서 한 번 읽지 않는 내가 튜토리얼 영상까지 봤을 정도다.

수많은 기능이 있지만 멋진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두 가지. ‘지우개’와 ‘혼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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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기능은 정말 개꿀이다. 이것만으로도 돈을 쓸 가치가 있다. 그동안 내가 숱한 앱에서 소위 말하는 “누끼 따기”를 해봤지만, 이렇게 쉬운 앱은 처음이다. 사진 속의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물만 남기고 배경만 지우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막내의 뒷모습 사진을 사정 없이 지우개 툴로 문대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피사체의 ‘외곽선’을 파악해서 외곽선 안쪽 부분은 한 번의 터치로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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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하게 인물 주변을 손가락으로 스윽 스윽 문대면 배경만 깨끗하게 지워지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배경과 인물의 경계가 흐릿한 부분은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잘못 지워진 부분은 복원 툴로 문대면 금방 되살릴 수 있다. 이런 설명이 구차할 만큼 쉽고 빠르게 사진에서 원하는 부분을 오려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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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작품은 홍콩 거리를 신나게 활보하는 막내 에디터의 옆모습을 오려내서, 제주도에서 촬영한 오름 사진에 합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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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디트 막내 개미의 질주]

대자연 속 인간의 존재를 표현해봤달까. 막내가 와서 보더니 코웃음을 친다. “이게 뭐예요, 언덕 오르는 개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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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술 세계가 무시당한 것 같아서 이번엔 꼴라주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나는 막내밖에 모르는 바보이므로, 또다시 막내 사진을 가져왔다. 발랄한 뒷모습 사진을 잘라내서 울창한 숲길에 합성했다. 여기까지는 지우개 툴을 이용해 레이어를 겹친 초보적인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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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를 추가해 ‘요소’ 기능에서 삼각형 테두리를 꺼낸다. 막내를 가린 삼각형 라인을 지우면 원래 사진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워진다. 그 다음엔 또 다른 사진을 꺼내서 삼각형 안에 다른 세계가 들어있는 듯하게 합성하는 것이다. 이 앱은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외에도 Pixabay의 이미지를 검색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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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과 대비되는 바닷가 이미지를 검색해서 불러온 뒤 삼각형 크기에 맞게 넣어준다. 그 다음 삼각형을 벗어나는 부분을 대충 슥삭슥삭 지워주면 된다. 뭔가 밋밋한 것 같아서 ‘듀오’ 기능으로 투톤 필터를 씌웠다. 한쪽은 파란빛, 한쪽은 붉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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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혼합 기능을 배워볼 시간이다. 말 그대로 두 개 레이어의 이미지를 적절히 섞어 완전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기능이다. 여러 종류의 혼합 툴이 있는데 ‘밝게’를 선택하면 어둡거나 그림자진 부분에만 배경 레이어가 비쳐 보여서 독특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에디터M과 나의 가슴에 뉴욕의 풍경을 품어 보았다. 왜, 별로라고? 안 되겠다. 좀 더 좋은 예시를 보여드려야겠다.

Enlight Photofox는 무시무시하게 복잡하고 기능이 많은 앱이지만, 대신 튜토리얼같은 콘텐츠 생산에도 열심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찾아가보면 어떻게 활용하면 재밌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가 가득하다. 그 영상만으로도 꽤 재밌으니 꼭 찾아보시길. 예술가들의 뛰어난 상상력에 놀라 박수를 치게 될 것.

이 기능의 제대로된 기능을 다 사용하고 싶다면 Pro 모드 결제를 해야한다. 월정액 방식인데 한달에 무려 7.69달러. 12개월 어치를 한 번에 결제하면 좀 더 저렴하지만, 대신 손이 떨린다. 35.99달러를 한 번에 지불해야 하니까. 먼저 무료 버전에서 충분히 손을 푼 다음에 판단해보시길.

여러분은 이 앱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벌써 궁금하다. 후후.

Enlight Photofox
Store –  iOS
Point – 이것은 흡사 상상력 테스트
Price – 일단은 무료.
Size – 151.1MB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