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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읽는 여자

아이패드 미니와 페이퍼 프로 뭐가 더 좋아요?
아이패드 미니와 페이퍼 프로 뭐가 더 좋아요?

2018. 01. 19

우리 모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사이에서 밀당중이다. 아, 물론 현재 스코어는 디지털이 압승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종이책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난 편리함에 굴복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난 요즘 거의 모든 책을 전자책으로 읽는다. 편리함은 생산성을 높인다. 결국 난 책을 훨씬 더 많이 읽게 되었다. 

지난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언박싱 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이패드 미니와 페이퍼 프로 뭐가 더 좋아요?”

난 이미 아이패드 미니2를 가지고 있다. 약 5년 전쯤 샀던 옛날 모델이지만, 아직 멀쩡하게 돌아간다. 내 아이패드의 용도는 단 하나. 바로 영상 시청이다. 손에 딱 들어오는 모델이라 침대에 뒹굴거리며 영상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그런데, 이걸로는 책을 읽지 않는다. 이상하지.

사실 아이패드는 책을 읽기엔 그닥 부족함이 없다. 왤까? 난 왜 굳이 전자책 단말기를 샀는가. 디스플레이나 배터리 같은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감상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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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프론트 라이트를 끄면, 종이에 인쇄된 화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물리적으로 잉크를 표면에 뿌려주는 전자잉크 방식은 마치 인쇄된 것처럼 화면과 딱 붙어 있어 오래도록 봐도 눈이 편안하다. 책 읽는 것 말고는 큰 재주가 없는 이 기기는 철저하게 독서만을 위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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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짐을 쌀 때, 아이패드 대신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를 챙긴다는 것은 틈 날 때마다 독서를 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비록 매일 그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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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리디북스 페이퍼 라이트를 써왔다. 이번 페이퍼 프로는 꽤 오랫동안 신제품을 선보이지 않았던 리디북스가 오랜만에 내놓은 반가운 소식이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집을 포기한 대신, 7.8인치 화면으로 시원하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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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종이책과 거의 비슷한 크기다. 이건 만화책을 볼 때 좋다. ‘가로 보기 기능‘으로 한 화면에 두 페이지가 보인다. 두 페이지에 걸쳐 그림이 있는 경우에도 끊기지 않고 시원한 화면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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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도 쉽다. 책을 읽다가 어둡거나 밝다 싶으면, 한 손가락으로 스와이프하면 밝기가 변하고 두 손가락을 움직이면 온도가 변한다. 적당히 조절하면, 침대 옆에 노란 조명을 킨 상태에서 전혀 위화감 없이 눈이 편안한 상태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솔직히 페이퍼 라이트의 경우 불을 다 끈 상태에서 보기엔 눈이 좀 부셨다. 리페프는 조도가 3배 정도 어두워져서 불을 모두 끈 상태에서 밝기를 최대치로 낮춰도 전혀 눈부심이 없다. 책을 읽다가 잠이 솔솔 쏟아지면, 플립 케이스를 ‘탁’하고 닫고 그 상태로 딥슬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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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의 상징인 물리키도 커졌다. 딱 2배 정도 커진 물리키는 이제 한 손으로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이동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자주 쓰는 건, 바로 메뉴 상단에 있는 ‘넘긴 버튼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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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 경우가 없는 나는 주로 비스듬히 누워서 읽거나, 혹은 똑바로 누워서 읽는다. 어떤 자세냐에 따라 물리키 위아래 중 엄지손가락이 더 닿기 쉬운 위치가 바뀐다. 이럴 때, 넘김 버튼 전환을 이용해 때로는 위쪽을 키를 다음 페이지로 또 어떨 때는 아래쪽의 키를 다음 페이지로 설정한다. 넘긴 버튼 전환을 누를때마다 친절하게도 어떤 키가 다음 페이지인지 알려주는데, 이런 순간에 바로 리디북스의 친절함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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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내가 책을 읽는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가만히 나의 눈치를 살피고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페이퍼 프로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고 맞출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퀵 버튼’이다. 오른손의 검지가 닿는 곳에 위치한 작은 버튼. 이건 내 입맞에 맞게 요리할 수 있는 나만의 즐겨 찾기다. 이 버튼을 길게 누르면,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기능이 나온다. 나의 경우 ‘터치 잠금 모드’를 설정해뒀다. 99% 물리키로 페이지를 넘기는 내가 화면 어디든 쉽게 잡고 독서를 하기 위해서다. 전보다 기기가 조금 커져서 손이 작은 나는 좀 더 본격적으로 기기를 쥐고 독서를 해야 하기 때문.

Processed with VSCO with av8 preset[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도서관처럼 책을 빌려 볼 수도 있다.]

리디북스의 전략은 사람에 따라 폐쇄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일단 열린 서재가 지원되지 않는다. 페이퍼 프로로는 오직 리디북스에서 제공하는 책만 사서 읽을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페이퍼를 사지 않는 이유로 꼽기도 한다. 이번 기기에서도 적용이 되지 않았다. 고객의 소리에 언제나 귀 기울여온 리디북스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게 의아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기기 최적화에 더욱더 신경 쓰고, 또 단골 고객을 더 살뜰히 챙기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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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정보를 얻거나, 혹은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 많다. 하지만, 굳이 24만 9,000원이나 하는 리디북스 페이퍼를 사서 읽는다는 것은 감성도 편리함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욕심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에 야트막한 발을 걸치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 리페프는 조금 더 많은 책을 읽고자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