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료 에디터M을 상징하는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태국에서 사 온 꼬지지한 담배 케이스, 네 번의 탈색으로 플라스틱이 된 머리카락. 그리고 마지막은 리디북스 페이퍼다. 그녀는 전자책을 사랑한다. 매월 꼬박꼬박 리디북스에서 책을 지르는 것이 그녀의 소박한 행복이다.
나는 반대다.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한다. 뭐든 디지털 파일로 소비하는 시절이라지만, 책은 손에 잡히는 실물이 좋다. 종이를 넘길 때의 느낌과 새 책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한다. 가장 좋은 건 책을 사는 순간이다. 아무도 더럽히지 않은 새 책의 구김 없는 속살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너무 즐거운 일. 문제는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을 좋아해 묵혀둔 책이 많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내 취향은 그러하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재밌는 제품을 하나 소개한다. 쿄우에이 디자인의 코우이치 오카모토(Kouichi Okamoto)가 디자인한 책갈피다. ‘Bookmark Light’라는 이름의 이 물건은 봐도 봐도 신박하다.
책장 사이에 곱게 껴놨을 때는 평범한 북마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녀석의 몸통을 우아하게 구부려 양 끝을 맞닿게 만들면 순간 고운 빛을 뿜어내는 조명으로 변신한다. 종잇장처럼 얇은 필름형 북마크가 빛을 내다니!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특수 필름에 전기 투과 잉크를 사용해 무늬를 인쇄하면, 아주 얇은 두께를 유지할 수 있다. 회로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이 잉크 속에 포함된 나노 입자의 은이다. 양 끝에 리튬 코인 배터리를 넣어두고 양극과 음극을 맞닿게 하면 LED가 발광하는 원리. 어쨌든 이 얇은 필름 속에 조명이 되기 위한 모든 요소가 갖춰져 있다는 뜻이니 설명을 들어도 신기하긴 마찬가지다. 가격은 쿄우에이 디자인 웹사이트에서 1,728엔.
이 제품을 조명 삼아 책 한 권을 읽기엔, 밝기도 배터리도 너무나 부족해보인다. 그래도 반딧불처럼 귀여운 아이디어가 아닌가. 적어도 고된 하루가 끝나고 잠들기 전, 책 사이에 껴둔 책갈피를 꺼내 시 한 편을 읽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부터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책 한 권 읽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구입했던 건 황인찬 시인의 ‘희지의 세계’. 오늘은 조금이라도 읽고 자야지. 피곤한 몸을 습격하듯 덮쳐오는 졸음 때문에 경화의 세계로 빠지기 전에.
Bookmark Light by Kouichi Okamoto
Point – 가장 중요한 배터리가 별매라니
Price – 1,728엔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