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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긋지 않는 여자

‘인 타임’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시간은 곧 화폐다.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버스를 탈 때도 내가...
‘인 타임’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시간은 곧 화폐다.…

2017. 12. 03

‘인 타임’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시간은 곧 화폐다.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버스를 탈 때도 내가 가진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부자들은 엄청난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생에 가까운 삶을 누리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일해서 하루의 삶을 연장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다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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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미로운 소재를 현실의 삶에 치환해보자면, 우리는 배터리를 연장하며 살아간다. 열심히 충전을 해서 게임도 하고, 쇼핑도 하고, 드라마도 본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헐뜯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도 배터리가 충분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배터리 시한부 인생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충전을 한다. 배터리 잔량이 특정 숫자 아래로 내려가면 몹시 불안해진다. 나 인생의 가능성 역시 그만큼 삭감당했다는 침통함이 몰려온다.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는데, 노트북 배터리가 끝나버린다면? 집에 도착하려면 30분은 남았는데 스마트폰 배터리가 끝나버린다면?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충전이 일상의 영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 내가 지금부터 충전을 해야하니 어서 선을 꽂아넣고 전기를 빨아들여야겠구나! 라고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손이 그곳에 닿아서 폰을 내려놓았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충전이 되는 그런 흐름. 삶의 모든 부분이 그렇듯 충전에도 유기적 인과 관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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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멍멍이 소리를 이렇게 정성껏 하는 거냐고? 무선 충전 패드를 들였다.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바꿔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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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질반질 귀엽게 생긴 벨킨의 무선 충전 패드를 두 개나 샀다. 사무실 책상에도 하나 올려두고, 회의용 테이블에도 하나 올려놨다. 이제 쓰던 아이폰을 테이블에 올려두기만 하면 된다.

사실 무선 충전이 아이폰만의 특권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 뒷북에 가깝다. 아이폰8 시리즈와 아이폰X에 무선 충전 기술이 들어가기 전부터 삼성이나 LG의 플래그십 스마트폰도 모두 무선 충전을 지원해 왔다. 이전까지는 아이폰 후면이 알루미늄 소재라 무선 충전 지원이 어려웠는데, 이번에 유리 소재로 바뀌며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이제서야 부랴부랴 무선 충전 기기를 마련한 이유는 선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윤택함을 뒤늦게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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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킨의 무선 충전 패드는 Qi(치) 무선 충전 규격을 지원한다. Qi는 무선 충전의 국제 표준 규격 중 하나다. 항상 독자 솔루션을 좋아하는 애플이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충전 규격을 선택한 건 반가운 소식이다. 공공장소에 마련된 무선 패드가 Qi를 지원한다면, 아이폰8 시리즈와 아이폰X도 충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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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써 아이폰의 무선 충전을 제대로 된 속도로 누릴 수 있는 건 벨킨 제품 정도다. 까만색 제품은 벨킨 부스트 업 Qi 무선 충전 패드. 패드 본체는 마이크로 USB 케이블로 연결하며, 올바른 위치에 스마트폰을 올려두면 초록색 불이 들어온다. 5W로 충전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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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은 막내 에디터 자리에 설치해두었다. 얼마 전에 아이폰5s에서 아이폰8으로 점프한 그녀에게 무선 충전의 신세계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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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애는 벨킨의 아이폰용 부스트업 무선 충전 패드. 이 제품은 7.5W로 충전 속도가 더 빠르다. 가격도 조금 더 비싸다. 예상했겠지만, 이 제품은 회의용 테이블에 올려놓고 내가 주로 쓴다. 나는 성격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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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품 모두 전화 수신은 물론 모든 기능을 그대로 사용하며 아이폰을 충전할 수 있다. 케이스를 씌운 채로 충전해도 문제없이 작동하더라. 최대 3mm 두께의 케이스까지 가능하다고 하니 엄청 블링블링한 옷을 입혀놓으면 호환되지 않을 수 있겠다.

아까도 말했듯 Qi 규격을 지원하기 때문에 갤럭시 노트8이나 V30 등 다른 스마트폰도 충전할 수 있다. 다만 아이폰8 시리즈와 아이폰X에 최적화된 충전 패드라 안드로이드 기기를 충전할 땐 7.5W 고속충전은 지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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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하나 꽂아 넣는 게 귀찮아서 무선 충전을 쓰는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손톱만큼 더 편리해지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게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유선 충전을 무선 충전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손톱만 한 변화도 아니다. 폰을 그 자리에 무심히 내려놓는 그 동작만으로도 전력이 공급된다. 아무 의미가 없었던 ‘내려놓음’에 진화한 기술이 덧대지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의식할 필요 없이, 번거롭게 케이블 끝을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쓰다가 내려놓고, 쓰다가 또 내려놓고. 너무 멋지지 않은가.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사무실에서 무선 충전을 쓰다 보니 집에서 자기 전에 충전 케이블을 꽂는게 답답하게 여겨질 정도다.

어쨌든 이제 디에디트 사무실에 놀러오는 분들은 무선 충전 패드의 우아함을 누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공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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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충전 패드와 함께 구입한 짜투리 아이템(?)이 있다. 우리 사무실엔 세 명의 에디터가 있는데 그중 한 명만 아이폰7을 쓰고 있어서 무선 충전 패드를 사용할 수 없다. 바로 에디터M. 쓸모 없는 무선 충전 패드 따위를 샀다고 육두문자를 날리는 그녀를 위해 충전 단자와 이어폰 단자를 동시에 쓸 수 있는 락스타를 선물했다. 이 자리를 빌어 에디터M의 뒷담화를 좀 하자면, 우리 노랑머리는 갓 출근했을 때 아이폰 배터리가 20% 내외다.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나 의심될 정도. 잘때 이어폰을 늘 끼기 때문에 충전을 할 수가 없다나 뭐라나. 제발 이제 충전 좀 하고 다니자.

충전 덕후 H의 리뷰는 여기까지.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